종교/묵상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그린빌나
2007. 8. 9. 10:25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의 답변에 스승은 반응이 없습니다. 세상의 판단보다 제자들의 생각이 더 궁금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서서 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의 고백은 순간적인 재치가 아니라 평생을 섬기겠다는 맹세였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행복하다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베드로의 고백을 재연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오늘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세주이십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세상이란 말에 있습니다. 어떤 세상이겠습니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구 전체이겠습니까?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먼저 나와 연관된 세상을 기억합시다. 내가 살고 있고 책임질 사람이 있으며, 내 미래가 있는 세상입니다.
바로 그 세상을 예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세주라는 고백은 그 자체가 신앙 행위입니다. 이를 누구나 입술로는 고백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의 승복인데, 그분을 느끼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 앞서, 그분께서 내 인생에 행하신 일들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야 답변이 쉬워집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베드로의 이 고백을 믿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믿어야 하고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망설여질 때 이 고백을 먼저 떠올립시다. 그러면 주님의 이끄심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세주이십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세상이란 말에 있습니다. 어떤 세상이겠습니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구 전체이겠습니까?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먼저 나와 연관된 세상을 기억합시다. 내가 살고 있고 책임질 사람이 있으며, 내 미래가 있는 세상입니다.
바로 그 세상을 예수님께서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세주라는 고백은 그 자체가 신앙 행위입니다. 이를 누구나 입술로는 고백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의 승복인데, 그분을 느끼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 앞서, 그분께서 내 인생에 행하신 일들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야 답변이 쉬워집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베드로의 이 고백을 믿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믿어야 하고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망설여질 때 이 고백을 먼저 떠올립시다. 그러면 주님의 이끄심을 느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