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경제’는 한-미 FTA를 닮았구나
▣ 글 이미지 15기 독자편집위원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제5회 인터뷰 특강-배신 ⑤
2006년 4월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부당함을 폭로한 다음날, 보수 언론들은 대문짝만한 기사로 충격을 전했다. “왕의 남자가 배신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이 정태인과 이정우(전 청와대 정책실장)를 배신한 것이라 밝혔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번 특강 최초로 배신의 ‘피해자’임을 자임한 연사는 시종일관 분명한 어조로 ‘진술’을 해나갔다. 배신 진술서. 그 1장은 새 정부의 경제성장 정책에 대한 것이었다.
출총제 폐지까지 재벌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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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태인 교수 |
새 정부가 경제를 살린다고 내놓은 방책이 네 가지다. 규제 완화, 감세, 공기업 민영화, 그리고 한반도 대운하가 그것이다. 내가 청와대 경제비서관 할 때 재벌들이 가장 원한 것이 수도권 규제·금산분리 완화와 출자총액제한 폐지였는데, 겨우 지켰더니 인수위가 세 가지 다 풀어줬다. 법인세 인하하면 이미 면세점인 영세 중소업자들은 득볼 것 없고 대기업만 8조원가량의 감세 효과를 보는데, 인하한단다. 이걸로 악화된 재정을 메우기 위해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쓴다. 네트워크 산업(수도·전기·철도 등)이든 가치재 산업(교육·의료·주거 등)이든 민영화되면 경제적 소수자에게 절대 불리하다. 시장에 맡기면 시골과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장치들은 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운하.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정 교수는 하얀 칠판 위에 음표를 그리듯 용어와 도표를 정리했다. 민영화로 상수도 교차보조가 폐지된다면? 도·농 수도요금을 나타낸 완만한 그래프가 갑자기 수직형으로 바뀌었다. 청중들 사이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탄식은 제2장 자유무역협정 설명이 시작되면서 더욱 크고 잦아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네 가지 독소조항이 있다. 첫째가 네거티브 리스트. 내가 개방할 분야가 아니라 개방하지 않을 분야만 적시한단 거다. 문제는 미래에 개방하지 않을 분야를 미리 알 수 없으므로 새로 생기는 분야는 무조건 개방해야 한단 거다. 근데 첨단산업은 미국이 강세다.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이들 산업은 다 미국에 넘어간다. 둘째가 래칫(Ratchet). 낚시할 때 쓰는 미늘 같은 건데, 거꾸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그리고 셋째 독소조항이 미래의 최혜국대우(MFN·Most Favored Nation)인데, 이러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계속 강화되는 구조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무서운 건 투자자국가제소(ISD)이다. 자본가나 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게 하는 건데, 투자자가 피해봤다고 판결나면 국가가 현금으로 물어줘야 한다. 실제 벌금이 33조원까지 나온 적이 있다. 나라가 결딴나는 거다. 한데 현재 이 판결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국제통상 전문가가 모두 미국인이다.
미국과 신자유주의에 경도돼 있다
괴괴함 속에 강연은 이어졌다. 그는 말하고 있었다, 비단 자신만이 배신의 피해자는 아니라고. 그렇다면 이 배신의 가해자는 누구고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도 못할 걸 내가 한다고. 역사에 남으려고 자유무역협정 한 거다. 남긴 남을 거다, 나쁜 쪽으로. (웃음) 청와대를 움직인 건 경제부처와 대기업, 그리고 보수언론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이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건 항상 그들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들에게 당할 수 없다. 외부에서 끊임없이 듣지 않으면 결국 포섭된다. 결국 대통령도 386도 돌아섰다. 나도 가슴이 아프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오바마가 말했다, “자유무역협정은 대기업엔 도움이 되지만 노동자에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게 진실이다. 우리 지식인들은 미국과 신자유주의에 너무 경도돼 있다.
강연의 합주가 청중의 한숨과 어우러진 합창으로 마무리돼갈 즈음, 정 교수는 “꼭 막아냅시다!”라고 외쳤다. 나 혼자 뭘 어떻게 해볼 순 없겠지만, 같이 해볼 순 있다는 거다. 시민단체도 있고 정당도 있다. 지자체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단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열심히 뛴단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단 한 명의 청중을 위해서라도. 그의 모습은 어쩐지 같은 피해자인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