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이야기

[스크랩] 쪽방촌의 슈바이처

그린빌나 2008. 9. 29. 08:33


좋은 직장,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극빈 환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한국의 슈바이처’ 선우경식 원장이 18일 오전 4시에 별세했다. 향년 63세. 선우 원장은 노숙인과 극빈층을 상대로 20년 동안 무료 진료를 해왔다. 자신은 돌보지 않은 탓일까. 그는 지난 2005년 위암 판정을 받은 뒤 3년 동안 병마와 싸워왔다. 투병생활 중에도 1주일에 한번씩은 병원에 들렀다. 그는 “진료는 못하지만 자원봉사자들과 환자들이 원장이 죽었나, 살았나 궁금해 할 것 같아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병세가 악화하면서 뇌사상태에 빠져 서울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1969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한 선우 원장.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킹스브룩 주이스 메디컬센터에서 3년 여간 열심히 공부한 끝에 당시 미국의 저명한 병원들로부터 좋은 일자리들을 제안받았지만 모두 뿌리치고 귀국했다. 고국에 돌아온 뒤 한림대병원 의과대 교수로 잠시 근무했던 그는 1983년 당시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관악구 신림동에서 무료 의술 봉사를 시작했다. 1987년8월 서울 영등포 역사 뒤편 ‘쪽방촌’에 요셉의원을 개원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생전에 “요셉병원을 맡아 1년만, 2년만 하겠다며 결혼을 미루다가 시기를 놓쳤다”고 말했다. 그는 영세민,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등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집중 치료하며 이들에게 ‘슈바이처’로 불려왔다. 그가 모든 것을 쏟아부은 요셉 의원을 거쳐간 이들은 약 42만 여명에 달한다. 선우 원장은 요셉의원을 지원하기 위해 창간됐던 월간 '착한 이웃' 창간호(2003년5월)에 기고한 글에서 “돌이켜보면 이 환자들은 내게는 선물이나 다름없다. 의사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는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 아닌가. 이렇게 귀한 일은 아무나 할 수가 없는 것이기에 나는 감사하고 이런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 민진기 기자) 그는 치유의 나눔의 나무였다 마지막까지 환자 돌보며 ‘약’ 아닌 ‘사랑’을 처방 가난한 이들은, 병보다 더한 마음의 고통까지도 보듬어주던 은인을 잃었다. 수많은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은, 나눔의 참 모습을 거울이 되어 보여주던 본보기를 잃었다. 가장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이야말로 더없이 소중한 선물임을 발견했기에, 그래서 20년간 떠날 수 없었던 그의 진료실은 이제 주인을 잃었다. 4월 18일 선종한 요셉의원 선우경식(요셉) 원장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던 노숙자와 행려인, 외로운 아픈 이들에게 모두를 내주고도 더 줄 것을 찾았던 그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우리시대의 성인(聖人)’이라고 했다. 지난 2005년, 본지 칼럼 ‘방주의 창’을 집필하며 선우원장은 가난한 이들과의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고인의 글에서 요셉의원과 함께 한 그의 20년 삶을 되짚어본다. “예수님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숨어드는 것이라 한다”(본지 2005년 5월 29일자). 고인은 의사였다. 미국에서 유학했고 서울의 종합병원 내과과장까지 지냈던 유능한 의사였다. 그런 그가 가난한 이들을 만났다. 1983년 신림동 ‘사랑의 집 진료소’에서 처음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 산동네를 누볐다.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은 넘치고 넘쳐났다. ‘가난한 환자에게야 말로 진정한 의사가 꼭 필요하다’. 1987년, 서울 신림동에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요셉의원’이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그의 삶이 시작됐다. “우리에게 기적이란 가난과 절망으로 망가진, 더럽고 게으르다는 이들에게서 예수님을 보는 일이다”(2005년 5월 29일자). 3개월을 버티기 힘들 거라고 했다. 스스로도 ‘2년만, 3년만’이라며 무료진료가 힘들고 고된 일이었음을 토로했다. 재개발에 밀려 요셉의원을 옮겨야 했고 쌀이 떨어지고 의약품이 바닥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환자들과의 숨바꼭질은 그가 술래였기 때문에 더 힘겨웠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고 기껏 치료해 내보내면 어디선가 술을 먹고 와 또다시 병원 문을 두드렸다. 술에 찌든 노숙자가 폭언을 퍼부을 때는 환자가 아니라 원수로 보였다. 헛수고요 어리석은 투자라는 갈등과 의심이 들었다. “노숙인의 파란만장한 질곡의 개인사를 듣노라면 땅바닥에서 밟히는 망가진 꽃잎을 떠올리게 된다”(2005년 2월 27일자). 마음을 다잡았다. 기적을 찾아 나섰다. 환자들 속에서 예수님을 찾는 숨바꼭질은 계속됐다. “원장님의 진료방식은 독특했어요. 진료를 하시면서도 끼니는 챙겼는지 내복은 입었는지, 운동화는 헐었는지를 항상 보셨죠.” 약보다는 밥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그의 처방전은 특별했다. 꼬르륵 소리가 나는 환자에게 밥을 줬고 내복이 없는 사람에게 옷을 입혔다. 꼬깃꼬깃해진 요셉의원의 약봉투를 주머니 속에 남긴 채 거리에서 죽은 환자의 보호자가 됐다. 세파에 망가져 떨어져 버린 꽃잎 같은 사람들이 요셉의원을 찾았고 그를 만났다. 20년간 42만여 명. 그의 진료실은 환자와 의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었다. “신앙의 눈을 뜨기에는 두이레 강아지만도 못한 나에게 예수님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게 꼭꼭 숨어계신 그런 분이다”(2005년 5월 29일자). 사람을 사랑하던 그도 사람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더 많은 환자들을 돌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던, ‘내과 의사가 암에 걸렸다’고 웃으며 직원과 봉사자들에게 애써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던 그런 사람이었다. 4월 14일에도 그는 요셉의원을 찾았다. 뇌출혈로 쓰러지기 하루 전날이었다. 암세포가 뼈까지 퍼져 통증이 심했다. 한 시간도 앉아있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하지만 ‘치료해야 할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있을 수 없다’며 진료실에 앉았다. 봉사자들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나흘 뒤, 태어난 지 보름도 안 된 강아지라며 자신의 일천한 신앙을 부끄러워했던 그는 꼭꼭 숨어계신 그 분의 곁으로 떠났다. 자신의 소망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들을 돌보다가…. 4월 21일 서울 명동성당. 선우경식 원장은 영정 속에서 웃고 있었다. 40년 지기 조창환(토마스 아퀴나스) 시인은 ‘하늘에서 별이 되어 별처럼 쉬실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개처럼 살던 자신을 사람 만들어 주셨다며 ‘아버지’라고 외치는 안근수(안드레아)씨의 울먹임에도, 성당을 가득 메운 1500여 명의 흐느낌에도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자신은 이제 할 일을 다 마치고 떠나겠다며, 내가 못다한 일은 여러분에게 맡긴다며, 그토록 찾던 예수님 곁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의사이자 신앙인인 내게 노숙환자란 생명과 삶의 벼랑 끝에서 만나는 환자이다. 당뇨를 앓는 환자들의 두 가지 화두, 즉 ‘밥’과 ‘인슐린’은 종종 세상 한 가운데서 신앙의 삶을 사는 일, 즉 선교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올 여름, 7월의 뙤약볕에 당뇨병에 걸린 노숙자가 냉장고 한 귀퉁이를 신세지자고 할 때 선교의 땅 끝에 와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본지 2005년 4월 17일자 ‘선교와 인슐린’ 중). 그가 세상을 떠난 4월 18일에도 영등포 쪽방촌 허름한 건물에 자리한 요셉의원은 문을 열었다. 가난한 이들에게 그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 가톨릭 소식지에서 - 고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아랫줄 가운데)이 2003년 겨울 영등포 쪽방촌에 위치한 요셉의원 앞에서 노숙자들을 진료하던 중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요셉의원 제공] “선우경식 원장님의 소식을 접하며, 이제껏 어려운 사람을 돕지 못한 제 무관심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20여 년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 진료를 펼친 ‘영등포 슈바이처’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19일 여의사인 이보은씨는 요셉의원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는 “저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종합병원에서 인턴을 마친 후 현재 작은 병원에서 일반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경험이지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라며 자원봉사 의사를 밝혔다. 선우 원장은 세상을 떠났지만 요셉의원은 되살아나고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남을 위해 살다 간 선우 원장의 삶에 감동받은 의사와 시민들의 자원봉사 참여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자신을 20대 후반의 사회 초년병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월급 일부를 모아 언젠가는 뜻 깊게 쓸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요셉의원을 알게 됐다”며 “매달은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방문해 작은 힘이라도 되어드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8년째 요셉의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변수만(69)씨는 “평소 자원봉사 문의가 한 통도 없던 날이 대부분이었는데 원장님이 돌아가신 이후 하루에만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며 “원장님이 지금도 큰일을 하시고 계시는 것”이라고 울먹였다. 기존 자원봉사자들도 요셉의원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요셉의원에서 2년째 무료 진료에 동참하고 있는 피상순(54·여)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나는 불교 신자인데도 원장님의 삶에 감동받아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선생님은 가셨지만 그 뜻을 받들어 봉사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기부금으로만 운영되는 요셉의원에는 후원금도 속속 답지하고 있다. 선우 원장이 별세한 18일 하루에만 40명가량이 인터넷상으로 후원 의사를 밝혔다. 병원에는 “저도 넉넉하지 않지만 한 달에 1만원, 2만원이라도 후원하고 싶은데 인터넷에 적힌 계좌로 보내면 될까요” “원장님 영혼을 닮아 좋은 일을 손톱만큼이라도 하고 살겠다”는 등 시민들의 후원 의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책도 검토되고 있다. 방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을 빈소에 보내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민관이 보다 긴밀히 협력해 사회적 취약층에 대한 지원 및 자활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승수 국무총리도 이날 빈소를 찾아 “신문을 보고 이런 분은 찾아 뵙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왔다. 소외된 사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19, 20일 이틀 동안 자원봉사자와 가톨릭 신자 등 2300여 명이 선우 원장 빈소를 찾아 추모했다. - 중앙일보 / 강기헌·임주리·홍혜진 기자 -
출처 : 파랑하늘과 하얀구름
글쓴이 : 하얀구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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