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바로 성전입니다(1코린 3,17)
2009년 본당의 삶의 방향
여러분이 바로 성전입니다(1코린 3,17)
우리는 천주교 신자로 행복을 추구하는 신앙인이다. 우리가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은 세상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어디서 이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우리가 찾고 있는 행복의 나라, 평화의 나라, 영생의 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한복판에 이미 와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내 안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안에 이미 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2009년도를 우리 안에 이미 와 있는 행복과 평화를 느끼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의 복음을 깨닫고 실천하는 일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하느님의 성전으로 이해하게 한다.
성전은 하느님이 계시는 하느님의 집을 말하는데 우리가, 이 세상이 바로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전을 찾는 이유는 하느님께 우리의 소원을 청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우리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하느님의 성전임을 깨닫기 위해서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의 성전으로 대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 이전 시대 사람들은 성전을 눈에 보이는 건물로만 생각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부르면서(요한 2,21) 모든 사람을 성전으로 대하게 해 주셨다.
성전은 사람들이 모여 하느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며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 건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도하는 우리들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라는 것이다. 바오로는 이 진리를 깨닫고 코린토 교회 신자들에게 이렇게 쓴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 코린 3,16.17)
그렇다. 우리가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며 또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하느님을 체험하게 해 주는 성전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에게서 하느님의 영을 느끼고, 하느님의 거룩함과 사랑을 체험하고 느껴야 한다.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개신교 신자, 불교 신자, 유교 신자, 또는 종교를 가지지 아니한 사람들에게서도 하느님의 자비를 느껴야 한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성전인데도 서로에게서 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서로를 하느님의 성전으로 대하지 못하는가?
입으로는 하느님이 거룩하다고 고백하면서 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하느님의 거룩함을 느끼지 못하는가?
왜 모든 이에게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가? 이것이 우리의 고민이다.
이에 대한 답변을 우리는 예수님께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려는 자들과 돈독이 오른 환전꾼들을 성전 밖으로 쫓아내시는 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요한 2,13-22)
그분은 비둘기를 파는 가난한 자들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 온갖 상인으로 장사진을 친 예루살렘의 풍경은 우리들 마음의 풍경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전에 몰려와서 소와 양을 더 많이 팔게 해 달라고, 돈을 더 많이 벌게 해 달라고, 부자 되게 해 달라고,
더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병을 낫게 해달라고, 나만을 위한 기도를 바친다. 이런 기도로는 서로에게서 하느님의 성전을 볼 수 없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성전 밖으로 쫓아내시려고 드신 채찍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장사꾼 마음, 소유욕, 명예욕, 권력욕 등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것을 다 치워 버려라.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그분께서 또 말씀하신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여기서 사흘은 당신이 십자가에 죽어 땅에 묻힌 기간을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하느님의 성전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남을 위하여 자기 몸을 땅에 묻으며 희생 제물로 내놓아야 한다.
성전은 나만의 행복과 평화를 비는 마음을 허물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의 몸을 희생하는 집이다.
예수님 이전 사람들은 자기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남을 희생양으로 삼았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죽은 그리스도를 알게 됨으로써 남을 위하여 나를 희생양으로 내놓는 존재가 되었다.
이로써 성전은 예수님과 함께 온 세상을, 온 우주를 살리는 집이 되었다.
우리가 성전이라면 우리가 바로 온 세상을 살리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온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살아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느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금년 2009년은 이렇게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성전으로 꾸미고,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성전으로 체험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2009년도 우리 본당 교우들의 삶의 방향이 되기를 기원한다.
2009년도가 진정 행복을 추구하는 신앙인으로 새로 태어나는 한 해가 되기를 염원한다.
우리가 성전임을 의식하기 위해 다음의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해 본다.
- 우리가 성전임을 깨닫도록 한다. 우리의 몸에서 사람들이 하느님의 존재를,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도록 노력한다.
- 우리가 만나는 사람을 하느님의 성전으로 만나도록 한다. 그들에게서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을 느끼도록 한다.
성전을 향하여 우리는 머리를 숙이고 절을 하며 경의를 표한다. 그렇게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의 예를 다 하도록 한다.
- 우리 본당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복음화 되는데 기여하자. 복음화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성전으로 대하게 하는 운동이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복음화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마태 28,18-19)하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우리 지역의 10%만 복음화 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이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신자든 아니든, 개신교 신자든 불교 신자든, 또는 그가 다른 종교를 가졌든 안 가졌든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100%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하느님의 성전으로 대하기를 원하신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성전임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우리의 마음을 열 수 있어야 한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성전으로 대하며 경배할 수 있어야 한다. 복음화는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 성경을 가까이 하는 신자가 되도록 한다. 성경은 나와 세상을 복음화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 성당을 지나는 길에 잠시라도 들려 성체조배를 하는 신자가 되도록 한다. 성체조배를 하는 그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도록 노력한다.
- 기도하는 신자가 되도록 한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임을 느끼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비는 것이다.
- 본당 일에 적극 협조한다. 본당은 구역과 반으로 조직되어 있다.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반과 구역 행사에는 적극 협조하며 참여하도록 해본다. 예컨대 성당 청소나 전례협조(미사 독서), 연도, 신심단체 가입 등.
- 가정의 복음화에 힘쓴다
2008년 대림 제 1주에
주임신부 이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