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연의 아침엽서

가장 낮게 나는 새가 가장 자세히 본다

그린빌나 2006. 4. 10. 16:25
도종환 시인의 산문집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를 펼치다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지은지 3년 되는 지붕을 헐어 내는 작업을 하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거기에는 꼬리에 못이 박힌 채 꼼짝 못하는 도마뱀 한 마리가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3년 동안이나 도마뱀은 못 박힌 어두운 벽에서 기적같이 생명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꼬리를 잘라 내고 도망갈 상황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며칠 동안 도마뱀을 관찰했다. 그랬더니 어딘가에서 먹이를 물어다 주는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있었다. 꼬리에 못이 박힌 도마뱀이 절망으로 몸부림치고 있을 때, 다른 도마뱀은 그 동료를 버리지 못하고 그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살았던 것이다.

시인이 쓴 산문이라서 그런지 새겨 둘 만한 잠언들도 많이 눈에 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 조나단'에 나오는 유명한 말,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잠언을 시인은 또 이렇게 멋지게 패러디하고 있다.

“가장 낮게 나는 새가 가장 자세히 본다.”
“가장 고요히 나는 새가 가장 깊이 있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