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연의 아침엽서
방귀궁녀
그린빌나
2006. 4. 11. 10:01
에도시대 일본 왕실에
'방귀궁녀'가 있었다고 한다.
공주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 다니다가 소리나 냄새 등으로 이상한 '기미'가 있으면 얼른 고개를
숙이고 '지금 방귀를 뀐 사람은 소녀이옵니다' 라고 둘러대는 게 그들의 역할이었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란 게 고작 '방귀'에 대한 죄를 덮어
쓰고 대신 사과를 하는 일이었던 셈이다. 정치적 실권을 잃고 '품위'만 지키도록 강요받았던 왕실이 만들었던 이상한 전통이었다. 한때는 이러한
배려 덕택에 공주가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비밀은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궁녀들도 사람인지라 스스로의 눈치껏 생리적인
'현상'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궁녀가 벌인 일까지 공주가 누명을 덮어쓰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궁녀는 '방금 전 방귀를
뀐 사람이 접니다'고 사실을 고백했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모두들 공주를 의심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공주 체면에 ‘내가 아니다’고
변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카타니 아키라로는 '4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에서 요즘은 ‘조직’이 방귀궁녀를 대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
‘방귀궁녀’가 없을 때 진정으로 편한 것이다.
-유상연의 아침엽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