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연의 아침엽서

절망 그리고 희망

그린빌나 2006. 4. 27. 16:22
절망 그리고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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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가운데서 핀 희망이 아름답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슬픔을 견뎌내고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실패를 밀쳐 냈을 때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작은 씨앗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연약한 씨앗이 싹 트면 사람들은 그 속에서 주위를 밝히는 빛을 보게 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 '를 남긴 빅터 프랭클이 그런 인물이다. 비엔나의 의사였던 그는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1942~45년 아우슈비츠의 119번, 다카우(Dachau)의 104번이라는 번호로 살아야만 했는데, 눈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 형제, 아내가 검은 연기로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슬픔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오후가 되면 나치스들이 문을 밀치고 들어와 일렬로 선 유대인들 중에서 그날 처형자들을 골라냈던 것이다. 거기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는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로 '아주 잘 면도 된 파란 턱' 을 꼽았다. 나치스들도 매일 아침 깨진 유리조각으로 피가 날 정도로 면도를 한 그를 차마 가스실로 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에게서 ‘삶의 의지’와 ‘아주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들이 가스실로 보내질 때마다 그는 자신의 비망록에 이렇게 썼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 나태한 방법이다. 죽음은 그리 서두를 것이 못 된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

 

- 유상연의 아침편지에서 -

 

더이상 떨어질 것도 없는 상태인 바닥으로 가장 낮아지므로서 세속의 모든 욕심 이기심을 버리고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 지기를 바란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수 있겠죠. 조그만 일이라도 사랑으로 이웃사랑을 한다면 연옥에 가서 치뤄야 죄값을 세상 살아가면서 치룬다면 천당은 예약된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