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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스리는 마음

그린빌나 2006. 6. 13. 16:17
제심(制心), 세상을 다스리는 마음
어지러운 세상에 서서

세상이 어지럽다. 5월 31일도 어지럽고, 부동산 정책도 어지럽고, 평택의 대추리도 어지럽고, 한ㆍ미 FTA도 어지럽다. 한국도 어지럽고, 아시아도 어지럽고, 세계는 더욱 어지럽다.

20세기, 악의 세기가 끝날 때 환호성을 올리며 진심으로 21세기는 선이 악을 이기는 세상이 되기를 염원하고 또 염원하고 있지만, 아직 그런 세상은 보일 기미가 없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 서서 간혹은 시계가 70, 80년대로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일곤 한다. 학문의 자유가 5·18의 군화발처럼 느껴지는 국가보안법에 짓밟힐 때, 생존권을 외치는 대추리 할머니의 갈라진 목소리가 이데올로기로 포장될 때, 우리 사회는 아직도 냉전의 시계를 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힘없고 빽없는 노동자들이 직장 밖으로 내몰릴 때, 20대 80의 정글에서 길을 잃는다. 북핵 문제가 공전이 되면서 전쟁 없는 평화통일 한반도의 이상이 여전히 요원할 때, 우리의 후손에게도 분단된 한반도 밖에 물려줄 게 없겠다는 절망감이 엄습한다.

독립국가로서의 주권을 찾았어도 주권국으로서의 당당함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100년 전인 1905년의 시간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은 혼동에 빠지게 된다.

나는 권력도, 부도, 명예도 별로 탐내 본 적이 없는 가난한 한국의 여성 서생이건만 왜 세상은 살기에 더 어렵고, 거칠어지고 있는가? 과연 미래의 세상은 민주화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더 많은 사람들이 주인으로서의 권리는 고사하고 생존권조차 보장받고 있지 못하는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요즘 세상을 보면서 어지럼증이 도져 1998년의 감격도, 2003년의 열정도 사라지고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

문득 사회에서 만났지만 은사로 존경하는 한 분이 떠오른다.
“선생님,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까요?” 막막했던 1990년대에 그 분께 물었다.

“자네는 역사를 공부하지 않았는가? 긴 역사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눈 깜박할 새지. 내가 못 이룬 것을 자네가 이루고, 자네가 못 이루면 후배가, 그 후배가 못 이루면 또 그 후배가 이루어 나가지. 역사의 긴 굽이는 한 번도 직선으로 달려가 본 적은 없으나 이상(理想)은 천천히, 지극히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는 한때 급진적 사회운동을 했다. 1960년 4·19항쟁 당시 대학생의 리더였고,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를 외쳤던 주역이었다. 그 후 대형 간첩사건들에 연루되어 긴긴 세월 감옥에서 청운의 꿈을 썩혔다.

20대, 온 세상을 손아귀에 넣은 듯한 촉망받던 청년이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세상으로 나왔다. 여러 동료들이 그에게 손을 내밀어 20대에 못다 이룬 꿈을 다시 이루어 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그저 웃었다.

운동권 후배들이 찾아와 “선배님, 선배님의 꿈을 우리가 실천할테니, 우리의 곁에서 도와주십시오”라고 요청했을 때도 그는 웃었다.

그는 정치권에 단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이미 마음 둔 곳을 찾아 정진했다. 그는 대학 시절, 대학 검도부 창단 멤버였고, 검도를 할 때면 자신을 초월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고 했다.

산 속에 들어가 몸을 수양하고 검도를 수련하면서 미련과 분노, 어리석은 욕망을 삭히고 버렸다. 얼마 되지 않아, 한 건물의 귀퉁이를 빌려 검도관을 차렸다. 제심관(制心館)이다.

그는 세상을 다스리는 대신 마음을 다스리기로 했다. 어쩌면 그는 마음을 다스리면서,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것은 낡은 것 속에서 싹튼다

오랜만에 평화문화 만들기에 글을 실으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스리고자 한다. 유한한 시간에 모든 것을 이루려 하지 말자. 하지만 내가 떠안아야 할 일이라면 그것이 비록 보잘 것 없다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리라 되새겨본다.

긴 호흡으로 세상을 보고자 한다. 35년에 60년의 기나긴 질곡이 억울할지라도 엉킨 실타래를 우리 민족의 손으로, 우리 국민의 힘으로 풀어나고자 한다. 시대사적으로는 아무리 어쩔 수 없었을지 몰라도 우리의 운명을 중국에게, 혹은 일본에게 맡겼던 선조들의 전철을 다시는 밟지 않으리라.

지식인은 과거 긴 세월, 대부분의 시간을 권력에 기생해 왔다. 그러나 절대왕권 하에서 사문난적이 되어 목숨을 내어 놓더라도 진리를 찾고자 했던 지식인들이 있었다.

지난 시절 평화통일을 주장하여 마녀사냥을 당했던 지식인들도 수없이 많았고, 독재에 항거함으로써 억지로 교단에서 떠나야만 했던 수많은 지식인들도 있었다.

또한 스스로 지식인의 기득권을 버리고 공장으로, 농촌으로, 탄광으로 떠났던 지식인들도 있었다. 이러한 지식인들은 인내하며, 희생하며, 피해당하며 묵묵히 일해 온 이 땅의 주인들과 함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해왔다.

새로운 것은 낡은 것 속에서 싹튼다. 새로움은 노회함을 쫓아가지 못한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하여 영원한 구관의 세상이 되는 한, 새로운 사회는 열리지 못한다. 새로움은 신열을 치르고서야 어렵게 싹튼다. 서툴지라도 새로움의 진정성과 믿음만이 세상을 얻을 뿐이다.

21세기 한반도의 급한 호흡을 다시금 가다듬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너무도 많은 과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없다. 남북이 같이 가는 세상, 남녀가 같이 가는 세상, 장애와 비장애가 같이 가는 세상, 같음과 다름이 같이 가는 세상을 열어가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고 굳건한 의지이다.

21세기는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새로운 것은 낡은 것 속에서 싹트고 자란다.

◎김귀옥 교수 <freeox@hansung.ac.kr>
한성대 교수. 사회학 박사.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운영위원, 우리겨레하나되기 기획위원, 동북아시대위원회 전문위원.저서: [이산가족, '반공전사'도 '빨갱이'도 아닌], [월남민의 생활경험과 정체성: 밑으로부터의 월남민 연구], [한국현대여성사](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