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연의 아침엽서
싫다, 사랑
그린빌나
2006. 6. 19. 16:37
바야흐로 이 세상에는 사랑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사랑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숨기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듯 사랑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데 여념이 없다. 그리하여 기꺼이
사랑의 노예가 되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낮에 만났다가, 사랑 때문에 저녁에는 헤어진다. 멋진 사랑 한 번 해 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
때문에 울고, 지금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도 사랑 때문에 운다. 문학도 영화도 상품 광고도 사랑 일색이다. 마침내 위대한 사랑의 시대가 우리
앞에 도래하였다.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은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그러나 정말 이 세상에 사랑이 넘치는가? 아니다. 넘치는 것은 사랑의 말일 뿐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가식의 언어일 뿐이다. 사랑은 언어 이전에 있다. 그것이 깃든 곳을 우리는 마음이라고 부른다. 사랑은 마음의 안쪽에 있다. 마음의 바깥에 있는 사랑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이 세상에 부지기수로 넘쳐나는 사랑을 쉽게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정호승의 어른동화 <모닥불>을 읽다가 다음 구절을 만났다.
"남한테 준 상처가 바로 너의 상처야"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나는 곧바로 나한테 덕지덕지 붙어 있는 상처를 확인했고, 나로 하여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이 따끔한 잠언이 질책이나 힐난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사랑을 가동시키는 모터 소리로 들리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러나 정말 이 세상에 사랑이 넘치는가? 아니다. 넘치는 것은 사랑의 말일 뿐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가식의 언어일 뿐이다. 사랑은 언어 이전에 있다. 그것이 깃든 곳을 우리는 마음이라고 부른다. 사랑은 마음의 안쪽에 있다. 마음의 바깥에 있는 사랑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이 세상에 부지기수로 넘쳐나는 사랑을 쉽게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정호승의 어른동화 <모닥불>을 읽다가 다음 구절을 만났다.
"남한테 준 상처가 바로 너의 상처야"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나는 곧바로 나한테 덕지덕지 붙어 있는 상처를 확인했고, 나로 하여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이 따끔한 잠언이 질책이나 힐난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사랑을 가동시키는 모터 소리로 들리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