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연의 아침엽서
돈과 시인
그린빌나
2006. 6. 28. 10:15
나는 노동을 하지 않고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그 누구보다도
싫어한다.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다. 그러므로 일하지 않고 돈을 가진 자들, 즉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을 태연하게 갉아먹고 있는 자, 노름판에서 남의 눈먼돈을 거저 주운 자,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천부당만부당하게 남의 돈을 갈취한 자, 그 모든 졸부들은 밥을 먹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쥐거든 숟가락을 당장 빼앗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있다. 돈 앞에서 지나치게 태연한 척하는 사람도 나는 싫어한다. 돈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세상을 사는 고매한 사람인 것처럼, 이슬만 먹고사는 정갈한 풀벌레인 것처럼 위선을 떠는 사람은 아주 질색이다. 돈으로부터 멀리 도망간다고 해서 돈이 사람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돈은 지독하리만큼 우리를 간섭하고, 우리한테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또 우리를 교묘히 꼬드긴다.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돈하고 정면으로 승부를 거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돈 앞에서 떳떳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떳떳하게 돈을 벌면 되는 것이다. “시인은 가난해야 시를 쓴다지요?” 가끔씩 이런 질문이 살 속에 얼음으로 박혀 들어올 때가 있다. 가슴이 뜨끔해진다. 그럴 때면 지금 나는 가난한가, 가난해서 시를 쓰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한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시인이라는 이름 밑에 가난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돈이 없어 궁핍한 상태를 가난이라고 한다면, 나는 시인이라고 해서 가난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다. 가난은 시인에게 따라다니는 천형이 아니다. 시인이 직업이 될 수는 없어도 다른 직업인들과 마찬가지로 시인도 돈을 벌어야 한다. 시를 써서 부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시를 써서 큰돈을 벌었다는 시인을 나는 만나보지 못했다. |
등록일 : 2006.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