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종교

일곱번씩 일흔일곱번이라도

그린빌나 2006. 7. 21. 15:29
 

"100개 병상에 의사 2명 … 그래도 환자의 천국"


[중앙일보 김정수.김형수]

"눈앞이 막막하게 느껴지다가도 기도를 통해 용기를 얻습니다.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형제들이 찾아오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치료해 주겠다'던 김성곤 전 의무원장님의 뜻을 이어갈 수 있으려면… 제가 힘을 내야죠."


20일 오전 서울 하월곡동의 성가복지병원 4층 원장실. 병원장 박영란(51.세례명 안브로시오) 수녀는 담담히 웃었다.


'성가 소비녀회' 수녀들이 1958년 성가의원이란 이름으로 세운 이 병원은 90년부터 16년째 노숙인과 극빈층을 전액 무료로 치료하고 있다. 병원장실 한쪽 벽엔 큼지막하게 금이 가 있다. 몇 년 전 병원 옆에 주상복합건물 공사가 시작되며 생긴 것이다. 지하 주차장의 지반도 내려앉았다. 건설사와 2년여간의 승강이 끝에 18일 보수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어수선한 공사보다 환자들과 병원 가족,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을 더 불안하게 하는 건 병원의 장래다.


병원의 의무원장은 공석이다. 외과의사로 병원을 사실상 이끌어 가던 김성곤 전 의무원장은 지난달 폐암으로 별세했다. 아무도 선뜻 후임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상근이던 내과의사 한 명도 개인 사정으로 이달 말엔 떠난다.


"제가 89년 이 병원에 간호사로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의사만 20명이 넘었어요. 250개나 되던 병상은 100개로 줄었습니다. 그것도 두 명뿐인 상근 의사들이 챙기기엔 역부족이죠."


수녀가 된 뒤 간호사 면허증을 딴 박 원장은 성가복지병원이 무료 병원으로 전환되는 작업을 도운 후 10여 년간 떠나 있었다. 지난해 2월 병원장으로 다시 왔지만 병원 규모는 훨씬 작아져 있었다.


이 병원은 건강보험 등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단지 후원금과 수녀들이 매달 생활비에서 십일조로 거두는 돈만으로 운영돼 왔다. 환자들은 70~80%가 노숙인이다. 나머지는 간병비나 약간의 본인 부담금조차 내기 어려운 극빈층과 독거노인들. 16년간 이곳을 찾은 환자는 45만 명이나 된다.


박 원장은 "노숙인은 허기와 외로움을 술로 달래는 경우가 많아 치료를 받고 나간 뒤에도 재발해 몇 번씩 다시 찾아온다"며 "의사로선 '자원봉사'나 다름없는 박봉도 문제지만 이런 환자들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버티기 힘들어 후임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무료로 전환할 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수녀들이 일을 저지른다'는 소리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수호천사'인 많은 후원자와 자원봉사자가 나타났다. 한국타이어.경동제약 등 기업들이 지원했고, 후원자 중에는 폐품을 수집하는 할머니.할아버지도 있다. 3000여 명이나 되는 자원봉사자 중엔 15년 이상 봉사하는 '천사'도 수십 명이다.


3년 전 인근 지역이 뉴타운으로 선정되고 대형 아파트 등이 들어서면서 병원의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


주민들이 "혐오시설(병원) 때문에 땅값이 오르지 않으니 이전해 달라"며 찾아온 적도 여러 번이라고 한다. 최근엔 주민들의 반발로 95년부터 실시해온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도 중단했다.


성가복지병원은 21일 16주년 기념 미사를 한다. 박 원장은 "어떻게 해서든 이곳을 지켜가겠다"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김정수 기자 newslad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