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홍수의 기억

그린빌나 2006. 7. 28. 09:53
홍수의 기억
최근 전국적인 물난리를 겪고 난 뒤에 홍수 조절용 댐 건설 여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내 어릴 적 낙동강가에 살 때, 한여름이면 연례행사처럼 강물이 범람하곤 했다. 잠 덜 깬 눈으로 아버지를 따라 물구경을 가보면 밤새 둑을 넘은 강물이 온 들녘을 뒤덮고 있었다. 어른들은 대부분 쯧쯧, 혀를 차거나 한숨을 내쉬며 그해 농사를 걱정하느라 얼굴빛이 발 아래까지 밀려든 흙탕물빛이었다. 새벽녘에는 송아지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한 사흘 비가 더 오면 마을까지 물이 들 거라며 떠벌리듯 걱정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어른들의 수심 가득한 표정이 나는 알 바 아니었다. 철이 들면서부터 한 해에 한 번 볼까말까한 이 물구경을 나는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어린 나에게 이 세상의 장엄함을 제일 먼저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바로 그날의 홍수였을 것이다.
70년대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교과서에서 배우면서 하나둘 늘어나는 다목적댐의 이름을 외우는 동안 내 마음 속의 홍수의 기억은 차츰 흐려지기 시작했다. 자연을 감성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이성으로 학습해야 하는 시기를 나는 통과하고 있었던 것.



등록일 : 200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