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성경속의 동식물

35 - 그늘을 만들어주는 싸리나무

그린빌나 2007. 2. 9. 17:37

[성경속의 동식물] 35 - 그늘을 만들어주는 싸리나무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싸리나무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생활과 밀접한 나무다. 옛날에는 싸리를 베어 집 울타리와 사립문을 만들어서 짐승들 침입과 바람을 막았다. 또한 싸리나무를 이용해서 소쿠리, 발, 고리, 바소쿠리 등 여러 가지 생활 필수품을 만들어 편리한 생활 도구로 써왔다. 최근까지도 싸리비는 없어서는 안 될 청소 용구였고 겨울에는 땔감으로 이용했다.

 

 성경에 나오는 싸리나무도 아라비아사막, 사하라사막, 시리아, 팔레스티나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사막이나 암석지대에서 볼 수 있는 나무이기에 우리나라 싸리나무와는 다르다. 개신교 성경에서는 이 싸리나무를 히브리 발음을 그대로 이용해서 로뎀나무라고 번역했다. 특히 사해 부근에 무성하게 자라는 콩과에 속한 비교적 큰 관목이다. 싸리나무는 잎이 거의 없으나 잔가지가 많아 광야에서 나그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좋은 나무 중 하나다. 뿌리는 길고 크며 땅속 깊이 뻗어 지하수까지 도달해 있어서 사막에서도 잘 견딘다.

 

 싸리나무는 회색의 가지들 때문에 다른 나무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잎은 바늘 모양으로 작으며, 꽃은 백색이고 이른 봄에 핀다. 2~3월에 하얀 꽃봉오리가 눈이 시리도록 광야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팔레스타인 등지 사막 구릉이나 암석지대, 특히 사해 부근에서 번성하고 그늘을 만들며 크게 자란다.

 

 구약성경에서 싸리나무는 엘리아와 깊은 관계가 있다. 바알 예언자들을 죽인 엘리야 예언자가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광야로 도망쳤다가 피곤에 지쳐 쓰러진 후 새 힘을 얻은 곳이 바로 싸리나무 덤불 그늘이다. 싸리나무 그늘을 우리나라 널찍한 느티나무 그늘쯤으로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싸리나무 그늘은 몸 하나 간신히 누워 쉴 정도의 넓이를 제공한다. 여름날 이스라엘 광야의 온도는 섭씨 50도를 훨씬 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건조한 날씨로 작은 그늘이라도 찾으면 더위를 식힐 수 있다. 호렙산으로 가는 도중에 엘리야 예언자도 홀로 바알과 싸워 이긴 후에 싸리나무 아래서 피곤한 몸을 쉬었다. "엘리야는 두려운 나머지 일어나 목숨을 구하려고 그곳을 떠났다. 그는 유다의 브에르 세바에 이르러 그곳에 시종을 남겨 두고, 자기는 하룻길을 더 걸어 광야로 나갔다. 그는 싸리나무 아래로 들어가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제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엘리야는 싸리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때에 천사가 나타나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하고 말하였다"(1열왕 19, 3-5).

 

 엘리야가 천사의 말대로 먹고 마신 음식으로 힘을 얻어 40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당도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싸리나무 뿌리는 예로부터 숯을 만드는 데 널리 쓰였다. "전사의 날카로운 화살들을 싸리나무 숯불과 함께 받으리라"(시편 120, 4).

 

 근동 사람들은 싸리나무 숯불은 타고 남은 불씨가 1년 동안이나 지속된다고 과장한다. 따라서 싸리나무 숯은  베드윈족과 이집트인 사이 중요한 무역상품이 되었다. 싸리나무는 숯으로 굽지 않아도 매우 잘 타며, 탈 때는 매우 요란한 소리를 낸다.

 

 오늘날에도 시나이 반도에 사는 베드윈 족들은 싸리나무를 숯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또한 싸리나무 마른 가지는 잠을 잘 때 깔개로도 사용할 수 있다. 기근이 들때는 식용으로도 사용했다. 싸리나무 하나를 보더라도 그 용도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세상에 가치없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평화신문, 제907호(2007-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