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묵상

[스크랩] 낮은 곳에 계신 하느님 -강길웅 신부-

그린빌나 2008. 3. 19. 22:00

  

 낮은 곳에 계신 하느님

-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겸손하여라. 그러면 주님의 은총을 받으리라”

오늘 제1독서(집회3, 17-19: 28-29)에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높고 귀한 사람이 많습니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당신의 오묘함을 겸손한 사람에게만 드러내십니다. 하느님이 겸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만한 자의 불행에는 약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또 오만한 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도 겸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낮아져야 합니다. 억울해도 내려가고 손해가 나도 낮아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바로 밑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라틴어로 겸손을 ‘후밀리따스’(humilitas)라고 합니다. 이 말은 ‘후무스’(Humus)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후무스는 흙, 즉 땅이라는 말입니다. 땅은 모든 것을 다 안아줍니다. 어떤 것도 배척하지 않습니다. 온갖 잡것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땅은 그 불순물들을 모두 정화시키면서 만물을 성장시켜줍니다. 마치 하느님 같습니다!

노자는 또 물을 최고의 선으로 바라봤습니다. 물은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스스로 올라가려고도 하지 않으며 기회만 닿으면 내려갑니다. 그리고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둥근 그릇에 들어가면 둥근 모양이 되고 네모난 그릇에 들어가면 또 네모꼴 모양이 됩니다. 그러면서 물은 만물을 키우며 생의 기운을 줍니다. 물도 꼭 하느님과 같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내려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턱도 없이 ‘밑지는 장사(?)’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저마다 올라가려고 합니다. 어떤 세상인지 가만히 있으면 당하고 손해봅니다. 자기 분수보다 더 확대하여 선전도 해야하고 젠체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팔리며 그래야 알아줍니다. 세상이 그처럼 사악해졌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올라간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언제고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올라가다 스스로 헛디뎌 떨어지기도 하지만 옆에서 기어이 붙들고 흔들어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올라가면 멀미나고 피곤합니다. 그리고 내려가면 손해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진정 올라가는 길입니다.

제가 있던 본당에 두 자매가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 한 자매는 너무 똑똑합니다. 본당신부가 한마디 하면 세마디, 네마디를 합니다. 자기 주관이 너무 세서 누구의 말도 안들어갑니다. 그런데 다른 자매는 자기 주장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도 “예”요, 저렇게 해도 “예”합니다. 그리고 정히 할말이 있으면 끝에 가서 살짝 한 마디만 붙입니다.

그런데 묘합니다. 똑똑한 자매만 만나게 되면 피곤합니다. 그리고 그쪽에서 뭔 부탁이라도 들어오면 기어이 거절하고 싶습니다. 자기는 이쪽 말을 안 들어주기 떄문입니다. 그런데 겸손한 자매만 보면 괜히 마음이 편하고 신이 납니다. 그리고 그쪽에선 뭔 부탁이 없어도 항상 그녀를 돕기 위해서 제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옛날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이 기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똑똑한 체 하기 때문에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 이것이 참된 겸손입니다. 죄인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진정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볍씨를 파종하기 전에 먼저 소금물에 담급니다. 그러면 싹을 틔울 수 있는 좋은 볍씨는 아래로 가라앉지만 쓸모도 없는 쭉정이 볍씨는 위로 뜨게 됩니다. 그래서 농부는 볍씨를 고른 다음에 좋은 것만 모판에 뿌립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시험해 보면 가벼운 사람은 위로 뜨게 마련이며 무거운 사람은 또 아래로 내려앉게 됩니다.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을 밑으로 볼 수 있기 떄문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올라가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그는 결국 아무것도 못 보고 닫혀진 세상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 부끄러워도 내려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진 자들이 하느님을 참되게 만날 수 있습니다.

겸손이야말로 모든 덕의 어머니이고 또 하느님 앞에 첫째가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겸손한 자는 절대로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교만한 자들이 밥먹듯 하는 일이 넘어지고 떨어지는 일입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밑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겸손한 자 되도록 합시다. 하느님이 바로 낮은 곳에 계십니다.

출처 : ┗━ 영원에서 영원으로 ━┓
글쓴이 : 금낭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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