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한국은 FTA 선진국?

그린빌나 2009. 11. 18. 08:07

한국은 FTA 선진국?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국가 간, 지역 간 '짝짓기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보고된 FTA 체결건수는 무려 402건(2008년 7월 현재)에 이른다. 1990년까지 40여 년 동안 WTO 전신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보고된 자유무역 짝짓기는 80건에 불과했다.

짝짓기의 대부분이 1990년대 이후, 특히 WTO가 발족한 1995년 이후 집중적으로 맺어졌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이후의 FTA 체결 붐을 '제3의 물결'로 부르기도 한다.

다자간 무역자유화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WTO 체제아래서 양자간, 지역 간 자유무역 짝짓기는 일견 모순돼 보인다. FTA는 분명 양면성을 갖는다.

전 세계나라들이 동시에 FTA를 체결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뜻이 맞고, 상호보완적인 나라들끼리 FTA를 맺어 양국 간 무역자유화를 먼저 실현하고 점차 대상을 넓혀 궁극적으로 지구촌 전체의 무역자유화를 실현시켜 나간다는 의미에서 FTA는 자유화로 가는 디딤돌이다.

반면 중·단기적으로 '그들만의 FTA'는 여타국들에 배타적일 수 밖 에 없다. 좋게 말해 '열린 지역주의', 내용상 '자유무역블록'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특히 WTO가 주도하는 다자간 무역자유화가 반(反)세계화, 반(反)자유화의 저항으로 난관에 부닥쳐 있는 현실에서 양자간, 지역 간 FTA는 그들끼리 무역전쟁을 피하는 최소한의 안전망 구실을 한다.

따라서 무역안보차원에서 거미줄처럼 FTA 망을 열심히 얽어 놓으려들고, 그 결과 경쟁적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부작용도 빚어진다. 

세계 10위의 무역대국 한국은 FTA 체결에서는 지각생이었다. 2001년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이 취임직후 미국이 FTA 체결에서 유럽연합(EU)보다 뒤져있다며 일대 분발을 촉구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미국은 현재 FTA 체결 14건( 한국 콜롬비아 파나마와의 3건은 의회절차 밟고 있는 중)에 체결제의를 받은 것이 11개국 4개 지역 등 15건에 달한다.

한국은 2003년부터 '동시다발 FTA 추진'에 나서 2004년 4월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아세안(ASEAN)과의 3개 FTA 등 모두 6건을 발효시켰고 미국 인도 EU 와의 3건은 서명 및 협상타결, 그리고 캐나다 멕시코 호주 등 6개국과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게다가 일본 중국 러시아 터키 등 6개국 2개 지역 등 협상을 준비 중이거나 공동연구중인 것이 8건에 달한다.

한국이 'FTA 선진국'이라는 국내 일각의 자랑이 터무니없지는 않다. 게다가 최근 한국·중국·일본 3국 정상회동을 계기로 한·중·일 3국간 FTA, 나아가 한·중·일 에 아세안 10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FTA'(EAFTA) 논의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3국간 FTA 논의시작에 세 정상들이 공감을 표시하고, 나아가 아시아 태평양자유무역지대 창설방안을 모색키로 합의했다는 얘기까지 전해진다.

FTA 체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인가. FTA체결 붐이 확산될수록 그 본래 가치와 실질적 이득은 예상외로 제한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선 타결을 서두르다보니 어렵고 복잡한 것은 제쳐두고 쉬운 것만 합의한다.

서로간 교역규모가 보잘 것 없는데도 단순한 상징으로, 또는 외교정책적 필요에서 경제 아닌 정치논리로 FTA를 체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FTA를 위한 FTA는 실질적 이득과 거리가 멀다. 한·인도 FTA는 인도측이 FTA라는 용어사용을 꺼리는 바람에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이란 생소한 이름으로 불린다.

그저 그런 FTA들의 확산은 세계무역자유화의 디딤돌이기는 커녕 다자간자유무역시스템을 해치는 결과를 빚는다. 도하라운드의 핵심과제는 농업부문이다. FTA에 열을 올리는 아시아국가들은 이 농업문제를 비켜가고 쉬운 것들만 타결해 결과적으로 도하라운드를 무력화시키고 다자협상과정에서 농업문제를 타결시켜야겠다는 각국 정부의 의지를 약화시킨다.

까다롭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글로벌 다자협상보다는 양자협상에서 타결이 유리하다. 이 양자협상의 타결을 토대로 그 범위를 넓혀가 다자간 글로벌타결로 이어질 때 양국간 FTA는 세계무역자유화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양자간 FTA가 어려운 과제를 피해가면 다자간협상에서 타결은 더욱 어려워진다. 근년의 양자간 FTA 붐이 '도하라운드의 공적(公敵)'이라는 지탄도 이 때문이다. FTA 체결 숫자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FTA협상은 두 갈래 게임이다. 국가 간 대외협상이 하나고 국내이해관계자들과의 국내협상이 다른 하나다. FTA의 성공에는 국내협상이 국제협상 못지않게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FTA체결에 따른 혜택은 다수의 소비대중에게 조금씩 분산되는 데 반해 피해는 패자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패자는 격렬하게 저항하고, 승자는 침묵하며 FTA 혜택의 무임승차를 즐기러든다. 국내협상전략과 그에 따른 정치적 리더십 없이 대외협상에 임한다면 'FTA의 정치'에 따른 끝없는 국력소모를 불러 올 뿐이다.

FTA의 당위와 경제현실은 엄연히 구분해야한다. 한·중·일 3자 FTA는 북미와 EU의 지역통합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필요성이 최근 재인식되고 있다. 3국간 양자간 FTA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낮은 단계의 타결로 3자 FTA를 실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양자간 FTA로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아시아의 역내교역비중은 55%에 달하지만 선진국에 완제품을 수출하기위한 중간단계의 생산협력이 대부분이다.

통화 금융협력은 초보단계이고, 아시아국가들 끼리보다는 글로벌 금융센터와 각기 바로 연결돼있다. 역내 FTA체결은 54건에 달하지만 제한된 관세감면이 고작이고 비관세장벽완화는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아세안 플러스 3을 지역협력구도로 고집하고, 일본은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끼워 넣어 아세안 플러스 6으로 물 타기를 시도한다. 한 중 일 3국간,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 간 라이벌의식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에 이어 EU와의 FTA타결로 한국이 FTA 아시아허브가 될지, 그저 그런 양자간 FTA들이 중첩되는 FTA '짬뽕탕면'(noodle bowl)이 될지는 주의 깊게 지켜 볼 일이다.

출처 : 조세일보(변상근 논설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