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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숨은 이야기

그린빌나 2006. 6. 21. 16:49
특명 “토고팀을 점잖게 압박하라”
 
한국 대표팀이 월드컵 원정 첫 승을 기록한 13일 토고 전을 떠올리면, 많은 축구팬들은 아직도 흥분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한국 대표팀의 승리는 물론 선수들의 실력과 열정이 어우러진 결과다. 한편으로는 프랑크푸르트 경기장과 주변에서 은근히 토고 선수단의 사기를 꺾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있었다. 오토 피스터 감독의 사퇴를 둘러싼 토고선수단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선수단 임금체불 등의 금전문제가 있었고, 경기 시작 직전 국가 연주를 놓고 벌어졌던 해프닝도 있었다. 무엇보다 경기장 안팎에 모인 3만 명 이상의 붉은 티셔츠 군단인 ‘다이내믹 코리아’ 응원단의 함성은 토고의 사기를 꺾는데 가장 큰 몫을 했다.

토고선수단 환영 한국응원단.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서 토고 선수단을 ‘점잖게’ 압박한 사건(?)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 ‘다이내믹 코리아’ 홍보관 주변에서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었다.

토고 선수단 ‘적지’(?)에 잘못 들다

한국-토고전을 앞두고 국제축구연맹(FIFA)이 추첨을 통해 정한 토고선수단의 숙소는 ‘인터콘티넨탈 호텔’이었다. 당초 주독 홍보관은 이 호텔이 한국 팀 아니면 상대팀인 토고 팀의 숙소가 될 것이라는 것을 호텔 직원을 통해 듣고 있었다.

이 호텔에 한국 종합홍보관을 개설하기로 지난 5월 말 최종 결정하고 6월 11일 홍보관을 오픈했다. 오픈 직전 토고 선수단 숙소로 확정되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 동안 호텔 직원들도 누가 오는지 정말 몰랐다고 한다.

임시홍보관앞 독일언론과 인터뷰.


이 호텔 로비층과 2층에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이 중심이 되어 관광공사와 코트라, 농수산물유통공사가 토고전을 앞두고 설치한 한국 종합홍보관이 설치되었다. 프랑크푸르트 ‘인터콘티넨탈 호텔’은 2005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머무셨고, 2005년 10월 한국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으로 참여할 때 본부센터가 있던 곳이다. 한국과 인연이 많은 호텔이라고 할 수 있다.

13일 저녁에는 한국 모 기업에서 온 응원단 200명과 독일 투자자 및  유관 인사의 토고전 승리 축하 행사가, 14일에는 코트라가 유럽 기업인들을 상대로 한국 수출상담회가 열리는 곳이었다. 또 한국 연예인 응원단과 방송사 기자들까지 이 호텔에 머물러 그야말로 프랑크푸르트의 ‘작은 한국’이 되고 있었다.

승리예감-문전성시를 이룬 임시홍보관.


바로 이 ‘작은 한국’에 토고 선수단의 본부와 숙소가 설치되다니. 토고 선수들은 한마디로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우리는 한국 홍보관이 있는 호텔에 우리 대표팀이 머물기를 기대했다. 그래야 홍보하는 입장에서 더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약소국인 토고의 숙소에 홍보관을 설치해서 토고 선수단을 괴롭힌다는 괜한 오해를 사면 우리의 체면 또한 말이 아닐 뿐 더러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고 선수단을 자극하기 보다는 한국과 좋은 경기를 해 달라는 의미에서 작은 환영행사를 열기로 했다. 스코틀랜드에서 있었던 연습경기에서 한국 응원단이 상대국 국가가 울리는데, 예의 없이 행동해 비난을 받았는데, 적어도 우리 ‘다이내믹 코리아’ 홍보요원들은 동방예의지국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따뜻한 환대에 마음 빼앗긴 토고팀

드디어 경기 전날인 12일 낮 12시 반, 호텔 로비에 한국 홍보관을 안내하는 한복을 입은 도우미와 ‘다이내믹 코리아’ 티셔츠를 입은 안내인이 배치되었다. 자연스럽게 이들은 토고 선수단을 환영하는 한국 축구팬으로 취재기자들에게 인식되었다.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던 한국과 독일 그리고 프랑스 취재진은 한복과 붉은 티셔츠를 입은 홍보관 안내직원을 한국의 토고 선수단 환영단으로 착각하고 연방 카메라를 터트렸다. 독일 ZDF 방송기자는 호텔 앞에서 기다리던 우리 홍보관 직원들과 토고 축구협회 관계자와 인터뷰하면서 “오늘 토고 선수단을 환영하는 한국 응원단이 몇 명이나 왔냐”고 물었다. “경기장 안팎의 3만 명 응원단이 다 토고를 환영한다. 우리는 토고와의 승리뿐 아니라 좋은 경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토고선수단을 환영하는홍보관도우미들.


그런데,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던 토고 축구협회 직원들은 한복의 자태와 ‘다이내믹 코리아’ 티셔츠에 반해 ‘적과의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환대와 아름다운 한복의 자태로 토고인들의 혼을 빼 놓은 것이다.

그동안 독일 언론은 지난 5월부터 토고에서 온 한 주술사의 예언을 소개했다. 토고가 상대팀에게 마술을 걸어 이길 것이라는 내용이다. 참 걱정되는 보도였다.

그러나 우리는 젊잖게 홍보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꼭 50년대 우리나라처럼 가난하고 어려운 토고에 대해 동방예의지국의 자존심을 지키는 응원과 홍보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의 그런 은근한 홍보에 토고 선수단은 마음을 빼앗겼다. 본의 아니게 토고의 혼을 빼앗은 것이다.

그래도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낸 것 아닌지 걱정

선수단 버스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도착한 토고선수단은 뜻하지 않은 환영인파를 맞은 셈.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도우미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정중하게 토고선수단을 맞이했고‘ 다이내믹 코리아’ 티셔츠를 입은 붉은 악마들은 한국대표팀과의 멋진 경기를 기원하며 ‘깍듯하게’ 그들을 환영했다. 우리 응원단의 토고 선수단 영접은 절대로 적대적이거나 예의에 어긋나지 않았다.

토고 선수들도 그런 우리의 환대에 고마워했고, 나라는 가난했지만 선수들은 에티켓이나 수준이 높아 보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적지(?)’에 발을 들여 놓은 토고 선수단의 그날 밤 잠자리는 어떠했을까. 혹시 그날 밤 토고 선수들이 우리 환영 인파에 위축되어 잠 못 이룬 프랑크푸르트의 밤을 보낸 것은 아닌지....

토고 선수 여러분, 우리 한국 붉은 악마들이 열심히 응원할테니 남은 프랑스전 꼭 이기세요. 토고 파이팅!
윤종석 주 독일홍보관 (digital@korea.net) | 등록일 : 2006.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