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에겐 ‘욕망의 늪’ 4년간 손실만 2조원
[조선일보 조의준기자]
지난해 4월 회사 돈 400억원을 횡령한 30대 은행원이 잡혔다. 이상했다. 엄청난 돈을 횡령했지만 그는 그 돈으로 술 한 잔 마시지 않았다. 오히려 빚만 있었다. 수사관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어디에 그 많은 돈을 써버린 것일까.
지난 7일 전남의 한 교도소. 전직 은행원 김모(33)씨를 면회실에서 만났다. 몇 번이나 편지를 보내고 설득한 끝에 어렵사리 성사된 만남이었다. 빡빡 깎은 머리, 바싹 말라 있었다.
“전 미쳐 있었어요. 돈을 채워 넣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빼야 했고, 그러다 보니 손실은 더 커지고….” 말하길 꺼리던 그였으나 선물·옵션의 무서움을 알려야 한다는 기자의 설득에 조금씩 말문을 열었다.
가난했다. 어머니는 파출부를 해서 김씨를 대학까지 보냈다. 김씨가 은행에 취직할 즈음 어머니는 알뜰살뜰 모은 3000만원을 내놨고 거기에 김씨가 2000만원을 더 보태 서울에 작은 전셋집을 마련했다.
“집이 3층에 있었는데 일흔이 다 된 어머니가 올라오지 못했어요. 일을 너무 해서 관절이 나갔거든요. 어떻게든 빚을 갚고 1층 집으로 이사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2001년 말 증권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선물·옵션 얘기를 들었다. 하루 아침에 빚을 갚고 1층으로 이사갈 수 있는 방법이 거기에 있었다. 실제로 하루에도 수십 배의 대박이 터지는 것을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었다. KOSPI200 지수가 올라갈 때는 올라가는 쪽에, 내려갈 때는 내려가는 쪽으로 걸면 됐다. 예측이 틀렸을 경우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지만, 유혹을 꺾진 못했다.
“그래… ‘한 방’이면 돼.” 은행에서 2000만원을 대출받아 투자를 시작했다. 곧 다 날렸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3년 동안 사채까지 빌려 1억2000만원을 쏟아부었다. 2004년 말, 월급으로는 이자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은행원이 신용불량자가 되면 해고될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집의 생활비를 대야 하는데….”
2004년 11월, 은행 자금결제실에 근무하던 김씨는 전산조작으로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2억원을 빼 1억원은 사채를 갚고 나머지를 투자했다. 다 잃었다. 12월 2억원을 또 뺐다. 이번도 헛수고였다.
돈을 잃을수록 그는 더욱 투기적으로 변했다. 그래야만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능성은 낮지만 수십 배를 벌 수 있는 곳에만 투자했다. “한 번만 터져주면….”
2005년 1월 38억원을 빼냈지만 한 달도 안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월엔 150억원을 뺐다. 물거품이 됐다. 3월에는 220억원을 뺐다. 그마저도 40억원을 남겨놓고 다 날렸다. 김씨는 계좌가 비어도 비어도 계속 돈이 들어오는 걸 이상하게 여긴 증권사측 신고로 덜미가 잡혔다. 조사결과 처음 선물·옵션을 시작한 뒤 그는 무려 6만번을 사고팔았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하루에 돈은 1억원씩 줄어들었다.
“이렇게 인터뷰하는 자체가 제 얼굴에 침뱉기지만, 그래도 다시는 저 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대박의 유혹만큼 위험도 크다는 걸 저를 보면 사람들이 알겠죠.”
한국의 옵션시장은 개설 10년 만에 하루 평균 1000만 건의 계약이 체결되는 세계 최대의 시장이 됐다. 선물시장은 하루 17조원이 오가는 세계 4위 시장이다. 한국 사회의 ‘대박’ 풍조가 거대한 욕망의 용광로를 만든 것이다.
선물·옵션의 원래 목적인 위험회피 기능은 어느 틈엔가 한쪽으로 밀려났다. 도박판이 된 선물·옵션시장에서 개인의 비중은 지난 2002년 60%를 넘은 후 계속 줄고 있지만 여전히 40%가 넘는다.
지난달 31일 서울 구치소. 보험사 융자부 직원이던 강모(33)씨는 기자에게 “할 말이 없다. 제발 나를 내버려 두라”고 말했다. 그는 5명의 친구 명의를 도용해 2002년부터 올 초까지 다니던 보험사로부터 19억원의 대출을 받아 17억원을 선물·옵션에 투자했다.
그는 경찰에서 “아내와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3년 만에 계좌는 ‘깡통’으로 변했다. 그는 월급으로 대출금 이자도 못 갚게 됐고 결국 부정 대출은 들통나고 말았다. 선물·옵션 시장에서 개인이 돈을 딸 확률은 거의 없다. 상품 자체가 미국 NASA(항공우주국) 출신의 수학자들이 고도의 수학적 지식을 동원해 발전시킨 것으로 일반인은 원리 자체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2~2005년의 4년간 개인 투자자는 KOSPI200 선물·옵션 시장에서 2조845억원을 날렸다. 그 돈은 고스란히 기관과 외국인이 챙겼다.
지난해 4월 회사 돈 400억원을 횡령한 30대 은행원이 잡혔다. 이상했다. 엄청난 돈을 횡령했지만 그는 그 돈으로 술 한 잔 마시지 않았다. 오히려 빚만 있었다. 수사관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어디에 그 많은 돈을 써버린 것일까.
지난 7일 전남의 한 교도소. 전직 은행원 김모(33)씨를 면회실에서 만났다. 몇 번이나 편지를 보내고 설득한 끝에 어렵사리 성사된 만남이었다. 빡빡 깎은 머리, 바싹 말라 있었다.
“전 미쳐 있었어요. 돈을 채워 넣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빼야 했고, 그러다 보니 손실은 더 커지고….” 말하길 꺼리던 그였으나 선물·옵션의 무서움을 알려야 한다는 기자의 설득에 조금씩 말문을 열었다.
가난했다. 어머니는 파출부를 해서 김씨를 대학까지 보냈다. 김씨가 은행에 취직할 즈음 어머니는 알뜰살뜰 모은 3000만원을 내놨고 거기에 김씨가 2000만원을 더 보태 서울에 작은 전셋집을 마련했다.
“집이 3층에 있었는데 일흔이 다 된 어머니가 올라오지 못했어요. 일을 너무 해서 관절이 나갔거든요. 어떻게든 빚을 갚고 1층 집으로 이사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2001년 말 증권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선물·옵션 얘기를 들었다. 하루 아침에 빚을 갚고 1층으로 이사갈 수 있는 방법이 거기에 있었다. 실제로 하루에도 수십 배의 대박이 터지는 것을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었다. KOSPI200 지수가 올라갈 때는 올라가는 쪽에, 내려갈 때는 내려가는 쪽으로 걸면 됐다. 예측이 틀렸을 경우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지만, 유혹을 꺾진 못했다.
“그래… ‘한 방’이면 돼.” 은행에서 2000만원을 대출받아 투자를 시작했다. 곧 다 날렸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3년 동안 사채까지 빌려 1억2000만원을 쏟아부었다. 2004년 말, 월급으로는 이자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은행원이 신용불량자가 되면 해고될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집의 생활비를 대야 하는데….”
2004년 11월, 은행 자금결제실에 근무하던 김씨는 전산조작으로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2억원을 빼 1억원은 사채를 갚고 나머지를 투자했다. 다 잃었다. 12월 2억원을 또 뺐다. 이번도 헛수고였다.
돈을 잃을수록 그는 더욱 투기적으로 변했다. 그래야만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능성은 낮지만 수십 배를 벌 수 있는 곳에만 투자했다. “한 번만 터져주면….”
2005년 1월 38억원을 빼냈지만 한 달도 안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월엔 150억원을 뺐다. 물거품이 됐다. 3월에는 220억원을 뺐다. 그마저도 40억원을 남겨놓고 다 날렸다. 김씨는 계좌가 비어도 비어도 계속 돈이 들어오는 걸 이상하게 여긴 증권사측 신고로 덜미가 잡혔다. 조사결과 처음 선물·옵션을 시작한 뒤 그는 무려 6만번을 사고팔았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하루에 돈은 1억원씩 줄어들었다.
“이렇게 인터뷰하는 자체가 제 얼굴에 침뱉기지만, 그래도 다시는 저 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대박의 유혹만큼 위험도 크다는 걸 저를 보면 사람들이 알겠죠.”
한국의 옵션시장은 개설 10년 만에 하루 평균 1000만 건의 계약이 체결되는 세계 최대의 시장이 됐다. 선물시장은 하루 17조원이 오가는 세계 4위 시장이다. 한국 사회의 ‘대박’ 풍조가 거대한 욕망의 용광로를 만든 것이다.
선물·옵션의 원래 목적인 위험회피 기능은 어느 틈엔가 한쪽으로 밀려났다. 도박판이 된 선물·옵션시장에서 개인의 비중은 지난 2002년 60%를 넘은 후 계속 줄고 있지만 여전히 40%가 넘는다.
지난달 31일 서울 구치소. 보험사 융자부 직원이던 강모(33)씨는 기자에게 “할 말이 없다. 제발 나를 내버려 두라”고 말했다. 그는 5명의 친구 명의를 도용해 2002년부터 올 초까지 다니던 보험사로부터 19억원의 대출을 받아 17억원을 선물·옵션에 투자했다.
그는 경찰에서 “아내와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3년 만에 계좌는 ‘깡통’으로 변했다. 그는 월급으로 대출금 이자도 못 갚게 됐고 결국 부정 대출은 들통나고 말았다. 선물·옵션 시장에서 개인이 돈을 딸 확률은 거의 없다. 상품 자체가 미국 NASA(항공우주국) 출신의 수학자들이 고도의 수학적 지식을 동원해 발전시킨 것으로 일반인은 원리 자체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2~2005년의 4년간 개인 투자자는 KOSPI200 선물·옵션 시장에서 2조845억원을 날렸다. 그 돈은 고스란히 기관과 외국인이 챙겼다.
[키워드] 선물(先物): 장래의 일정한 시기에 현물(現物)을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미리 매매 계약을 하는
거래
옵션(Option): 특정 시기 안에 현물을 일정한 가격으로 매매하는 ‘권리’를 거래하는
것.
(조의준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joyju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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