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못보는 나도 유학가서 공부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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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7일 오후 3시 대구대 재활과학동 5층의 한 강의실. 문을 드르륵 열고 조성재 교수(37·직업재활학과)가 강단에 오른다. 그의 손에는 작은 노트북처럼 생긴 기계가 들려 있다.
"첫 수업이니 누가누가 이 수업 등록했나 보자. 김○○, 너 아직 졸업 못했구나. 이번 학기엔 제발 좀 열심히 해라. 박○○, 넌 몇학번이지? 내 수업이 처음이구나. 이○○, 우린 지난 학기 보고 또 보네."
소리로만 들으면 다른 수업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조 교수는 종이 출석부가 아닌 손에 들려 있는 시각장애인용 PDA에서 출석부 파일을 점자로 읽으며 출석을 부르는 중이다. "자, 이번 학기엔 '재활상담'을 개론적으로 다루려고 해. 강의안 다 받았지?"
조 교수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빛과 어둠 정도만 구별할 수 있는 시각장애 1급. 점자로만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는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 공개채용에서 당당히 임용돼 이번 학기로 네학기째 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들은 "시각장애인 교수라고 해서 수업이 불편한 건 별로 없다"면서 "강의 준비를 많이 해오시기 때문에 수업이 매우 활기찬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각장애인의 직업이라는 게 거의 대부분 안마시술사죠. 학교(서울맹아학교)에서 직업 훈련도 받았어요. 근데 저는 그게 하기 싫었어요. 그 직업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적성의 문제였죠."
공부를 하고 싶었던 그는 유학(미 웨스턴미시간대 석사·웨스턴미시간주립대 박사)을 떠났다. 국내에선 점자로 된 책이 너무 없었다. 집안 형편이 좋지도 않았지만 부모님도 장애 아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앞도 못보는 네가 무슨 수로 외국에서 공부한단 말이냐" 하는 핀잔을 주변에서 듣기도 했다. "학비는 제가 다 벌어야 했어요.온갖 장학금 다 알아봐서 이것저것 몇 개 탔죠. 강의 조교는 필수로 해야 하고 그 하기 싫은 안마까지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로 해야 했죠."
점자도서 접근성에 있어 미국이 좀 낫기는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공부하기엔 여전히 난관이 많았다. 점자로 나오는 책이 한정돼 있고, 전공서적은 더더군다나 그랬다. 문서를 점자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파일이 있을 때 얘기다. 출판물 파일을 구하지 못하면 그에겐 무용지물이다. "저자한테 e메일을 보내요. 사정을 듣고 책 전체를 파일로 보내주면 좋은데, 저작권 도용 우려로 안보내주면 책을 일일이 문서 인식 스캐너에 넣어서 문자로 변환한 다음 다시 점자로 변환해야 읽을 수 있죠. 근데 전공서적엔 복잡한 표가 많잖아요. 어떤 책은 제가 사서 점자로 읽기까지 거의 1년 동안 변환 작업을 해야 해요." 거기에다 점자책을 읽는 속도는 보통책을 읽는 속도보다 1.5배 정도 더 드니 남들보다 배의 시간을 공부에 투자해야 했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공부하기 편했다는 걸 한국에 와서 절감했다. 출판물을 파일로 받기가 더 힘든 데다 인터넷도 그래픽 위주로 돼 있어 음성 서비스에 의존해야 하는 시각장애인에겐 자료 검색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요즘 다른 교수와 공동 번역작업을 하고 있는데, 보통 사람에겐 평범한 의사소통의 창구인 e메일 하나 확인하는 것도 그에겐 쉽지 않은 일상이다.
그렇게 어렵게 공부한 그는 공부할 책이 널려 있는 데도 학생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한다. "수요일 엠티갔다가 금요일에 와요. 그러면 수목금 다 노는 거잖아요. 축제는 일년에 두번씩이나 하고, 그러면서 등록금 비싸다고 하죠. 제가 봐도 등록금이 비싸요. 그럼 비싼 만큼 열심히 해야죠. 안 그래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영남일보 정혜진기자 junghj@yeongnam.com,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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