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식당을 하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드디어 가게문을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이건 할 엄두가 나지 않아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국의 식당 주인들이 솥단지를 내던지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 현장에서는
정부가 식당업을 ‘재난산업’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 나온다. 재난산업이라! 낯선 말이다. 그러면서도 낯익다. 재난에 가까운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정부에서라도 특단의 대책, 혹은 경제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리라.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이 나라에는 유독
식당들이 많이 생겨났던 것 같다.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밀려난 가장들이 가장 손쉽게 투자할 수 있는 업종도 식당업이었던 것 같다.
식당업이 어려움을 겪는 근본 원인이야 깊어진 불황의 탓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만큼 이 나라 사람들이 먹고 살 방편으로 ‘먹는 장삿집’들을
많이 택한 탓도 있지 않을까 싶다.
88올림픽을 앞두고서 이 나라 방방곡곡들에서는 웬 고깃집들, 이름 하여 무슨무슨 가든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 그 가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가든 뿐이랴. 무슨무슨 파크라 이름 붙여진 ‘자는 장사집’들은
왜 또 그리도 많이 생겨났던 것일까. 그리하여 이 나라에서 좀 경치 좋다 싶은 곳들은 하루가 멀게 가든과 파크가 생겨났던 것인데,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가든에서 밥 먹고 파크에서 잠자느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법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그 가든들, 그
파크들,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더기 폐업을 해야 할 시대가 온 것인가. 그 원인이 단순히 불황인데 먹는 집, 자는 집들이 너무
많아서일 뿐일까. 먹고 자는, 어찌 보면 ‘단순 업종’들이 어려움을 겪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혹시 다른 곳에도 있지 않을까. 먹고 자는 것이
동시에 가능한 유명 호텔이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 빼곡히 산재해 있는 보통 식당, 보통 여관들이 ‘재난’을 겪는 이유는 어쩌면 그만큼
보통시민, 혹은 중간층 시민들의 삶이 그만큼 힘겨워진 때문이 아닐까. 달리 말해서 그만큼 빈부의 격차가 커진 때문이 아닐까.
어떤
사회든지 그 사회의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간층이 두터워야 할 터인데, 이제 우리 사회에서 그 중간층의 존재가 그만큼 없어진 때문이
아닐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세월 중에 유행했던 말이 ‘나도 중산층’이라는 말이었던 기억이 난다. 너도 중산층이요, 나도 중산층이었던
시절이 분명이 있었다. 바로 그 시절에 이 나라 국민들의 생활패턴 중에 ‘외식’이라는 말이 끼어들었던 것 같고, 고기 못 먹고 산 지난 세월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듯이, 외식 하면 으레 이 나라 가장들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나가 고기외식을 시켰던 것이다.
고기도 한
십년 먹고 나니, 이제 한들이 풀린 것일까. 이제 세월은 어느덧 웰빙바람이 불어, 그것도 돈 있는 사람들한테나 해당될 고급의 생활방식으로서의
‘잘 먹고 잘 사는’ 바람이 불어, 비싼 유기농 대신 ‘전통적’ 혹은 ‘관행적’ 재료를 쓰는 보통의 식당들에는 돈 있는 사람은 오지 않고 돈
없는 사람은 돈이 없어 오지 않는다. 자는 집들 주인들이 들으면 몰매 맞을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파크들, 그 ‘러브 하는 집’들 쇠퇴해 가는
거야 어찌 보면 바람직한 면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테고, 문제는 먹는 집들인데, 무슨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일까.
그런데 어느
먹는 집은 이런 고도의 불황 속에서도 손님이 하루에도 70명이 넘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고 있다는데, 다름 아닌 인천의 작은 국수집이다. 손님은
많으나, 그 집의 매상 지표는 사실 돈이 아니다. 오늘 얼마나 많이 나누었느냐이다. 그것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집에 와서 행복했느냐이다.
부드러운 사회로 가는 길이라는 기사를 실은 신문을 보니, 오늘, 이 나라에서는 부자를 인정하지 않고 가난한 자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나라 안 부자들은 어인 일로 그들의 부를 부정당하는가. 이 나라의 부자들이 그만큼, 나누지 않았다는 방증인가, 아니면 이 나라의
부자들이 그 부를 축적하는 방식에 있어서 결코 대다수의 서민들이 흔쾌히 동의할 수 없었던 어떤 사회적 ‘야료’가 있어서였던가. 또는 그 모든
이유 때문인가.
돈은 결국 돈 그 자체보다도 그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쓰여지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법일텐데,
로또복권에 얽힌 이야기 중에 의미심장한 것은, 로또 복권에 당첨된 적지 않은 부부들이 당첨 된 후 이혼을 하고 재산분할 문제로 가족간에
법정소송까지 가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는데, 이왕 먹고 살기 어렵다는 아우성 진동하는 시대에 돈과 행복의 함수관계를 곰곰이 한번 성찰해 볼
일이다.
이 나라 부자들이 그 부를 인정받지 못해 결국 돈이 있어도 이 사회 내에서 그리 행복한 부자일 수 없다면, 과연 그 부를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관건은 결국 나눔의 생활화, 그 뿐이지 않겠는가. 가진 사람들에게 나누라는 요구를 하면 또 어디선가, 나의 발언에 대해
일방적 부자 때리기라고 이를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옛이야기 중에는 부자가 풍년에 곳간 채웠던 이유는 흉년에 그 곳간문 열려고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을, 그는 결국 자신만 잘 사는 것이 진정 잘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 공선옥의 살아가는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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