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도화지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고심한 적이 있었다. 축구공을 실감나게 그려야 했는데 미술에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월드컵에 쓰이는 꼭짓점이나 모서리가 없이 14개의 굽은 조각을 붙여 놓은 '팀가이스트(Teamgeist:
팀 정신)'라면 차라리 그리기가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12개의 5각형과 20개의 6각형을 이어 붙여 둥글게 만든 공의 모습을 입체감 있게
그리는 것은 내게 벅찼다. 우선 5각형과 6각형을 그려 넣는 것부터 문제였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럴듯한 모습이 생겨났지만
명암 표현이 문제였다. 색을 겹쳐 칠하고 축구공을 빛에 비추어 생겨나는 그림자도 표현했다. 지우고 덧칠하고 휴지로 문지르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과제물을 제출했는데 C라는 점수가 나왔다. 그런데 높은 점수를 받은 아이의 그림은
단순했다. 축구공 조각을 정성들여 그린 것도 아니었고, 명암이 잘 표현 된 것도 아니었다. 대신 그의 그림 아래에는 사람의 발이
그려져 있었다. 나의 항의에 선생님이 뭐라고 설명을 했지만 당시에는 왜 그 아이 그림이 A를 받아야 하는 지 승복할 수 없었다. 공을 들여도
내가 더 많이 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를 한다.
홀로 있을 때엔 단순한 원이었을 뿐이지만 발이 공에 닿는 순간 더 이상 원이 아니라 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 인(人) 자가 두 사람이 기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사람이든 그림이든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때라야 서로가 살아나는 것이다.
홀로 있을 때엔 단순한 원이었을 뿐이지만 발이 공에 닿는 순간 더 이상 원이 아니라 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 인(人) 자가 두 사람이 기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사람이든 그림이든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때라야 서로가 살아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