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꼭 지키자

고객 제일주의 - 고객의 질도 높아져야

그린빌나 2006. 9. 12. 10:47

음란고객도 OK할 때까지?




[한겨레] 상습적인 음란전화와 폭언에 시달리는 콜센터 상담원들…업체들의 소극적 대응과 ‘고객 제일주의’가 사태 악화시켜

▣ 김민경 인턴기자 yukishiro9@naver.com

‘…콜센터 아웃소싱 업체 소속의 파견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희 옆팀이 너무 속상한 일을 계속 당해서 상담을 드립니다. 옆팀은 스포츠게임의 결과를 안내하는 업무를 하는데, 일부 고객들이 상습적으로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거나 음란물을 틀어놓고 그 소리를 듣게 합니다. 거의 매일 상습 고객이 몇 명씩은 꼭 있습니다. 녹취된 통화 내용 중 한 예를 올려봅니다.

상담원: 안녕하십니까, 상담원 ○○○입니다.

고객: 야, XXX야, 17회차 결과 불러봐.

상담원: 네, 21 대 49입니다. 고객: 아, XX, 너네 짰지?

상담원: 고객님, 저희가 결과를 어떻게 짭니까.

고객: XX, 달린 주둥이라고, 이 XX야 이게 말이 돼?…’

“지칠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게 좋다”

최근 한 단체에 접수된 온라인 노동상담 내용이다. 상담자는 사용사업주 쪽이 “어떤 전화라도 절대 상담원이 먼저 끊으면 안 된다고 못박아뒀다”며 “고객 서비스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인 욕설과 반말을 참아내야만 하는 것인가”라고 고충을 호소했다. 홈쇼핑 고객 상담원이라고 자신을 밝힌 또 다른 상담자는 “오늘만도 음란전화를 두 통이나 받았다”며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에게 고객 서비스를 꼭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콜센터에서 상담원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힌 또 다른 상담자는 “직원들이 고객의 폭언과 성희롱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는데, 상대가 고객이기 때문에 무조건 참아야 한다. 회사 쪽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냥 넘어가려 한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콜센터는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는 않지만, 가장 흔하게 접하는 대표적인 서비스직이다. 이동통신 요금제를 문의할 때, 홈쇼핑에서 상품을 주문할 때, 신용카드 한도를 확인하고 싶을 때, 전화를 걸면 20~30대 정도의 젊은 여성 상담원이 상냥하게 응대해준다. 백화점이나 할인마트, 외식업체의 서비스직과 달리 콜센터 상담원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그 존재를 잘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콜센터 상담원들은 익명성의 뒤에 숨은 고객의 폭언과 성희롱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114 전화 안내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인포서비스는 지난 7월부터 기존의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을 “사랑합니다, 고객님”으로 대체했다. 특이한 것은 밤 10시부터 아침 9시까지의 심야시간대에는 변경된 인사말을 적용하지 않고 기존 방식 그대로 인사한다는 점이다. 전해영 과장은 “그전부터 114로 음란전화가 적지 않게 걸려와서, ‘사랑합니다’ 인사말로 인해 그런 전화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한 대형 홈쇼핑 업체 직원 ㅎ(25)씨는 신입사원 시절 콜센터 업무를 하루 체험하다가 음란전화를 직접 받았다고 말했다. “아무 말도 없이 신음소리만 계속 나더라. 주위 상담원들이 그럴 땐 그냥 이어폰을 귀에서 떼고 상대방이 지쳐 먼저 끊을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게 좋다고 조언해줬다.” 상담원이 그냥 끊으면 상대방이 다시 걸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취한다고 한다. 이 회사는 음란전화 등 업무와 관계없는 전화의 경우 상담원이 먼저 끊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 ㅎ씨는 특히 홈쇼핑에서는 속옷을 파는 시간에 음란전화가 많다고 덧붙였다. “지금 저 모델의 속옷 사이즈가 얼마냐. 그럼 지금 전화 받으시는 분의 사이즈는 얼마냐”는 등의 전화가 걸려온다는 것이다.

폭언은 더 빈번하다. 전화를 받자마자 욕을 퍼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무시한다며 화를 내거나 부당한 보상 요구를 계속하는 사람도 있다. 상담원이 지금 전화를 거는 번호가 집 번호냐는 의도로 “고객님, 지금 댁이십니까?” 하고 묻자, 상대방이 “네가 왜 내가 집에서 놀고 있는 것 가지고 시비냐”며 폭언을 시작하기도 한다. 여름철 불쾌지수가 높은 날이나 술 취한 사람들의 문의가 많은 한밤중에 폭언이 잦다.

성희롱에 대한 관리직의 인식 부족

폭언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업체 안에서 공감이 이뤄져 있는 반면, 성희롱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높지 않다. 프리랜서 콜센터 상담원 교육강사인 이준주(34)씨는 ‘한 공기업의 콜센터 하도급 업체 매니저급’의 말을 인용해 고객의 성희롱에 대한 관리직의 인식 부족을 우려했다. “‘음란전화야 당연히 많다. 하지만 상담원들도 별로 신경 안 쓴다. 그들도 (그런 전화를) 좋아한다’며 가볍게 넘기더라. 나도 미처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사실 여성들이 근무할 환경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14 민원상담실에서 일하는 마영금(29)씨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인 욕을 하곤 하는데, 그런 전화를 받으면 정신적 타격이 커서 그 다음 전화를 받기가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경력이 긴 상담원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보통 상담원들 중 그런 전화를 받고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너무도 수치스럽고 불쾌해서 얼굴만 붉히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게 보통 상담원들의 반응이다.”

보통 콜센터에선 음란전화를 한 전력이 있는 고객한테서 전화가 오면 모든 상담원에게 “주의! 변태임!” 등의 메시지가 뜬다. 과거 그 고객한테서 전화를 받은 상담원들이 그 발신번호의 참고란에 남겨둔 경고인 것이다. 이 메시지를 보고 사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이들이 마련할 수 있는 ‘대책’의 전부다.

상담을 신청하는 이들은 입을 모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회사가 원망스럽다” “그런 고객들을 고발할 방법은 없는가.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고객들에게 법적으로 대처해 문제를 해결할 뚜렷한 방도는 지금으로선 없다시피 하다. 국가인원위원회법 제2조를 보면 직장 내 성희롱의 주체는 ‘공공기관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로 한정돼 있다. 사업장의 제3자인 고객의 폭언과 성희롱은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폭언·음란전화 고객에 대한 법적 대처 방안으로 가장 실효성 있는 근거는 오히려 성폭력특별법 14조 ‘통신매체 이용 음란의 죄’다. 형사고소나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이 가능하다. 상담원이 고객의 발신번호를 알 수 있고 통화 내용도 녹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 하지만 처벌까지 이끌어내기엔 걸림돌이 너무 많다. 발신번호만을 근거로 인적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뿐더러, ‘통신매체 이용 음란의 죄’에 대한 처벌은 가벼운 벌금형이라 수사기관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범인을 색출하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민사 손배소 역시 배상금이 100만~200만원 정도라 상담원이 소송 비용과 업무 시간을 희생해가며 소송을 진행할 만한 액수가 아니다.

직장 내 폭언 등에 관해선 별도의 법적 규정이 없다. 2001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당시 여성노동단체를 중심으로 △성희롱의 주체에 거래 회사, 고객 등의 제3자를 포함하고 △‘직장 내 폭언·폭행’ 조항을 신설해 언어적·물리적 폭력행위에 의한 고용환경 악화를 명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개정안에 반영되지 못했다. 고객 폭언의 심각성은 모든 상담원이 두루 공감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처할 법적 근거는 전무한 셈이다.

대부분 계약직, 회사에 책임 요구 못해

여성단체 등은 법적 대응의 한계를 지적하며 당장 가능한 조치로 회사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한다. 서울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상담활동가 ‘신기루’는 고소 등의 방법보다 상담원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건 직원들을 보호하려는 회사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문제 고객에 한해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하는 등의 규정 하나만 있어도 직원의 스트레스는 많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도 고객에 대한 서비스’라며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게 하는 업체들 얘기를 들으면 정말 잔인하다 싶다”며 직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업체를 비판했다. “콜센터는 기본적으로 모든 통화를 녹취하게 돼 있다. 게다가 발신번호와 인적사항도 확보하고 있으면서 왜 적극 대응하지 않는가.”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활동가 ‘아름’은 “상담원이 개인적으로 대응하기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므로, 회사가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고객에게 경고를 하거나 고소를 대신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담원 대부분이 파견 또는 계약직인 탓에 노조를 조직해 회사에 이런 책임을 요구하는 건 불가능해보인다.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파견직의 고충은 그래서 더 심하다.

한편 회사 쪽이 적극적으로 폭언·성희롱 고객에 단호히 대처한 사례도 있다. GS텔레마케팅의 전신인 GS홈쇼핑 콜센터는 상습 성희롱 고객에게 통화 녹취 테이프 등을 내용증명으로 보내 업무방해 등에 해당되는 행위임을 경고한 바 있다. 정도가 심한 경우 고객에게 거래 중단을 통보하기도 한다. 기업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이지만 고객의 성희롱 전화가 업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대응한 것이다. 그 결과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오르고 회사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다. LG카드의 경우 남성 직원으로 주로 구성된 ‘HELP팀’을 두고 폭언과 음란전화에 대응하게 한다.

정기적인 교육도 콜센터 상담원의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된다. 커뮤니케이션과 감정조절 능력을 ‘재충전’함으로써 문제 전화에 대한 대응력을 높인다. 상담원들이 교육시간을 통해 함께 모여 사례와 정보를 교환하고 억눌린 마음을 털어놓음으로써 치유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에 100~300건의 전화를 처리해야 하는 상담원들에게 집단 교육시간을 충분히 내주는 업체는 많지 않다.

콜센터 상담원을 대상으로 폭언과 성희롱을 일삼는 이들은 상담원들이 고객의 욕설과 성희롱에 결코 맞설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점을 악용한다. 상담원 교육강사 이준주씨는 “고객 유형별 교육이든, 업종별 교육이든 간에 원칙은 딱 하나, ‘고객을 화나게 해선 안 된다’로 수렴된다”고 말한다. 어떤 경우를 당한다 해도 상담원은 평정을 지키며 ‘고객지향적 언어’를 써야 한다. 상대방이 대뜸 음란전화를 해도 상담원 쪽이 “죄송합니다만, 고객님”이라고 자세를 낮추며 ‘이러시면 안 된다’고 부탁해야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친절해야 하고 고객우선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 상담원에게 이중의 스트레스를 가한다. 그래서 친절하게 전화를 받는 상담원들의 경쾌한 하이톤을 들으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깝다.

성희롱 고객에게도 경어 사용

서두에 소개한 콜센터 직원은 상담에서 고객의 폭언과 성희롱 사례를 묘사하면서도 끝까지 고객에 대해 경어를 사용했다. “전화 너머로 비디오라도 틀어놓은 듯… 아무 말이 없으십니다” “무조건 ‘XXX야’ 하며 화를 내신다고 합니다”…. 본인과 상담자 외엔 아무도 볼 수 없는 비공개 게시판에 고객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순간조차 고객을 높일 정도로, 몸에 밴 ‘고객지향성’은 무섭다. 상담원들은 농담처럼 “고객이 OK할 때까지 하려다 상담원이 KO 된다”고 말하곤 한다. 상담원들은 자신의 안내에 고마워하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한테서 일의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상담원을 외면하는 ‘고객제일주의’는 이들의 미소를 앗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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