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성경해설

집회서는 어떤 책인가요?

그린빌나 2006. 11. 9. 09:55

집회서는 어떤 책인가요?

집회서란 성서 이름은?

집회서는 제2경전 중에서 지혜서 다음으로 나오는 성서입니다. 집회는 모임이라는 뜻이죠. ‘집회서’는 초대교회에서 세례를 준비하는 예비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용한 책이라서, 교회의 책이란 뜻으로 이 이름을 붙이게 되었던 거죠. 그전에는 저자의 이름을 붙여서 “벤 시라의 잠언” 혹은 “시라”라고도 불리웠답니다.

누가 썼나요?

집회서 말미에 “시라의 아들 예수의 지혜”(51,30)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어요. 이처럼 저자가 자기 책에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구약성서에서 예언서를 제외하고는 유일하다고 할 수 있어요. 아마도 자기 저서에 자기 자신의 소개를 담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여요. 집회서에 소개된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벤 시라(=시라의 아들)는 젊은 시절부터 율법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오래도록 명상하고 외국여행도 하면서 쌓은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자 학교를 열었던 예루살렘의 명문 율사로 여겨져요. 원래 히브리어로 쓰인 이 책은 저자의 손자에 의해서 그리스어로 번역되어서 널리 읽혀지게 되었답니다(머리말).

언제 썼나요?

기원전 180년경에 쓰여졌을 것으로 보여요. 저자의 손자가 “유에르게테스 왕 삼십팔 년에 이집트에 가서 그곳에 머무를 때에 고상한 교훈이 담긴 책을 한 권”(머리말) 번역했다는 기록에 비추어, 비교적 정확하게 집필연대를 추정할 수 있어요. 유에르게테스는 프톨레매오 7세(기원전 170-116)를 가리키므로, 유에르게테스 왕 삼십팔 년은 기원전 132년이죠. 따라서 번역자와 할아버지 벤 시라의 나이 차이를 감안하면, 이 책이 50년 전에 쓰여졌으리라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해요. 또한 벤 시라는 대사제 시몬을 높이 찬양할 뿐 아니라(50,1-24), 시몬의 아들 오니아 3세가 페위된 이후(기원전 174년)에 벌어진 비극적인 상황과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기원전 175-164) 치하의 극심한 박해에 대한 어떤 암시도 찾아볼 수 없거든요.

왜 썼나요?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조와 시리아의 셀류코스 왕조에 의해서 더욱 널리 퍼진 헬레니즘 문화권 안에 살면서, 전통신앙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회의하는 유다인들을 붙들어 주고자 했어요. 율법을 통하여 계시된 참 지혜를 지니고 있으므로, 헬레니즘을 무작정 따라가기 보다는, 하느님께서 일러주시는 올바른 지혜의 길을 추구하라고 촉구해요. 워낙 방대한 내용이라 인생의 문제들중 다루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에요. 하지만 모든 주제에 앞서서 이스라엘 전통 안에서 이미 전해 내려오는 지혜를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있답니다.

<새김과 나눔>

집회서 저자는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전통신앙을 지켜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세계화의 바람 속에 휘말리고 있는 요즈음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지혜의 완성은

주님을 두려워함에 있으니(집회1-23장)

지혜의 근원은 하느님의 말씀(집회 1,1-4,10)

* 지혜는 어디에서 옵니까?(1,1)

모든 지혜는 주님께로부터 오며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어요. 따라서 주님을 두려워함이 지혜의 시작이자 완성이에요.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만 해요.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황금을 불 속에서 단련하듯, 하느님께서 우리를 단련하신다는 믿음으로 참고 견디면서요. 실제로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마음에 들도록 애쓰며 그분의 율법으로 만족해 합니다. 궁핍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고 고아들을 아비처럼 보살펴 주면서 말이죠.

지혜의 보상(집회 4. 11-6,17)

* 어떤 사람이 참된 벗을 만들 수가 있을까요?(6, 17)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삶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의견을 내야 할 때 잠잠하지 않고, 죽기까지 진리를 위해 싸우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요. 손을 내밀어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베풀기도 하면서요 또한 의욕과 정력만을 믿고서 탐욕에 빠지지 알도록 조심해요. 주님의 자비가 크시니 내가 아무리 많은 죄를 지어도 용서하시리라고 자만하는 일이 없도륵 조심하구요. 이처럼 주님을 두려워하면서 사는 사람은 참된 벗을 만들게 돼요.

지혜로운 처세(집회 6,18-14,19)

*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배우는 것이 많게 되지만, 귀를 기울일 줄 알면 무엇이 될까요?(6,33)

젊을 때부터 교양을 많이 쌓는 것이 좋아요. 밭을 갈고 씨를 뿌리듯이 지혜를 가꾸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되니까요. 그러나 처음에는 속박처럼 여겨지더라도 지혜의 족쇄와 칼을 스고 전력을 기울여 지혜의 길을 가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러다 보면 자녀와 부모들에게 지성을 다하게 되고, 사제들을 섬기고, 친구와 우정을 지켜가는 데 만전을 기하게 되죠,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들이고, 일을 할 때에도 늘 주님께 신뢰를두며, 친구들을 가려 사귀면 좋겠지요.

참 지혜와 거짓 지혜(집회 14,20-23,27)

* 주님께서는 무엇을 옥새처럼 귀하게 여기시고, 당신의 눈동자처럼 아끼십니까?(18,22)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에요. 자기 자녀들을 지혜의 보호 밑에 둘 뿐 아니라, 지혜를 의지함으로써 망신을 당하지 않으니까요. 주님은 인간의 선행과 자선을 귀하게 여기시는 분임을 깨닫고, 이웃에 대한 의무에 소홀히 하는 일이 업어요. 인간의 말로가 비참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용서를 주님께서 용서를 많이 베푸시는 다는 것을 믿고, 생명의 아버지신 주님을 부르며 헛된 욕망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곤 해요.

<새김과 나눔>

집회서 저자는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그동안 어떤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생각해 왔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역사 안에 하느님의 영광이

(집회 24-51장)

지혜의 찬미(짐회 24,1-33,18)

주님과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새 가지는 무엇입니까?(25,1)

지혜는 주님께서 영원으로부퍼 정해 주신 자녀들의 어머니로, 지혜를 완전히 터득한 사람은 일쩍이 아무도없었으며, 그 깊이를 알아낸 사람도 고금에 없었죠 그러니 젊었을 때 아무것도 모아두지 않으면 늙어서 찾을 수가 없어요,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큼 더 행복한 사람은 찾기가 힘들어요. 장사며 차용 등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 가운데서 자신을 경계하는 일이 바로 계명을 지키는 길임을 일러주어요.

율법과 제사, 하느님의 정의(집회 33,19-38,23)

*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생명이며, 그것을 빼앗는 것은 살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34, 21)

꿈은 어리석은 자에게 환상의 날개를 달게 해서 미혹시키므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것이 아니라면 거기에 마음을 쓰지 말라고 당부해요. 또한 제물을 많이 바친다고 해서 죄를 용서받는 것은 아니며, 일꾼에게서 품삯을 빼앗는 것은 그의 피를 빨아 먹는 것이라고 일러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많은 제물을 바치는 것과 같으니,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대로 능력껏 아낌없이 바치라고 당부해요. 주님의 이름을 받드는 백성들에게 회망을 채워주시기를 기도드리는 가운데,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자신을 단련하라고 일러요.

지혜를 쌓으려면(집회 38,24-43,33)

* 사람은 어떻게 해야 현명해집니까?(38,24)

학자가 지혜를 쌓으려면 여가를 가져야 하고, 사람은 하는 일이 적어야 현명해진다고 일러요. 온 정력과 정신을 기울여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은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온 마음을 바치는 사람으로, 깨우침의 영감을 충만히 받을 거에요. 창조주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불러요.

역사적 인물에게서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

(집회 44,1-51,30)

*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하늘로 불려 올라가서 후대를 위하여 회개의 모범이 된 사람은 누구입니까?(44,16)

주님께서는 역대 선조들을 통하여 당신의 위대하심을 보여주셨으므로, 역사적 인물들에게서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해요. 왕권을 가진 사람도 있었고, 슬기로운 사람도 있었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예언자도 있었다면서, 온 회중이 그들의 지혜를 칭송할 것이라고 밝히는 가운데 에녹, 노아, 다윗, 솔로몬 등 구체적인 인물을 들어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요. 끝으로 지혜를 추구하면서 살아왔던 자신의 삶에 대해서 하느님께 감사의 노래를 바쳐요.

<새김과 나눔>

집회서 저자는 자연과 역사 안에서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나는 지금 우리를 둘러싼 생태계 안에서 무엇을 봅니까? 지나간 우리 역사, 나 개인의 인생 안에서 무엇을 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