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성경해설

예레미야서는 어떤 성서인가요?

그린빌나 2006. 11. 9. 10:32

예레미야서는 어떤 성서인가요?

이 책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과 그의 행적을 적은 책이라 하여 그 이름을 따서 ‘예레미야’라 했어요. 후기 예언서 중 이사야, 에제키엘과 함께 분량이 많아 대예언서로 분류되지요. 예레미야는 대략 기원전 640년경에 아나돗의 사제가문에서 태어났어요. 아직 소년에 지나지 않았던 기원전 627년에 예언자로 불림받아, 이후 40여 년 동안 예언자 활동을 했지요. 그의 이름의 뜻인 “야훼께서 던지다, 급히 보내다”처럼, 그가 활동한 시대에 유다의 운명은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처해 있었어요. 예레미야는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길로 회개를 호소하며 하느님의 심판을 알렸지만, 결국 귀담아 듣는 이 없어 처참하게 멸망당하는 조국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는 아픔을 겪었지요. 뿐만 아니라 조국의 배반자, 거짓 예언자로 몰려 여러 차례 죽을 위험을 겪는 등 예언자로서 개인적인 고통도 심하게 받았답니다. 그래서 그를 눈물의 예언자’, 수난의 예언자’라 부르기도 하죠.

예레미야

언제 누가 썼나요?

물론 예레미야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서의 뼈대를 이루지요. 예레미야서는 제자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주는 예언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해요(36,4). 그러니까 예레마야가 활동하던 시기에 많은 부분이 쓰여진 거죠. 하지만 예레미야서도 다른 성서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편집과정을 거쳤어요. 예레미야의 예언이 참된 하느님의 말씀임을 깨달은 바빌론 유배기 때 예레미야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들이 그의 말을 수집해서 덧붙였어요. 그래서 예레미야서는 시간 순서대로 되어 있지 못하고 왔다갔다하는 부분이 꽤 있답니다.

왜 쓰여졌나요?

요시아 왕이 죽은 다음 유다는 동쪽의 신흥 강대국 바빌론의 압력을 강하게 받았어요. 남쪽에는 비록 위축되긴 했지만 여전히 강대국인 이집트가 버티고 있었구요. 유다는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았지만, 왕과 대신들은 이집트에 빌붙어 바빌론과 싸우려고 하였죠. 이러한 혼란기에 예레미야는 먼저 우상을 숭배하고 하느님의 말씀과 법을 무시하는 유다인들의 생활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하느님의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예언하죠. 아울러 그는 성전과 시온에서 하느님을 모시고 있기에 결코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거짓 믿음과 군사외교적인 정책으로 살 길을 찾으려는 지도층의 자세를 비판합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언제 어디서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고 그분의 말씀을 깨어 들으며 그대로 실천하는 삶이고, 이것이 궁극적인 살 길임을 알려주어요. 때로는 바빌론에 항복하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는 가운데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기억하시고 그들과 새로운 계약을 맺어 새 공동체를 이루시는 희망 찬 미래가 펼쳐진다고 알려주어요.악을 심판하시는 하느님과 새 계약으로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유다 멸망이라는 처참한 역사를 통해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오늘 우리에게도 삶의 자세와 생활양식을 되돌아볼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죠.

<새김과 나눔>

종교적으로는 성전에, 정치적으로는 이집트에 의존한 유다처럼, 나와 내 주변의 공동체가 미래와 현재의 안전을 맡기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느님께 내 미래를 맡긴다는 신앙자세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가리킬까요?

나는 이렇게 심판하리라

(예레 1-19장)

이스라엘의 죄와 심판(예레 1,1-6,30)

하느님께서는 자신과 이방신을 무엇에 비유하십니까?(2,13)

예레미야는 사무엘처럼 소년이었을 때 예언자로 불림받습니다(1,6). 그가 모세처럼 부르심을 회피하려 하자, 하느님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그의 사명은 ‘뽑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는’, 낡은 것을 무너뜨리고 새것을 심는 큰일입니다.

예레미야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가장 큰 죄는 야훼 하느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입니다. 이는 간음한 짓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배반한 자식들아 돌아 오너라”(3,22)고 애타게 부르시며 회개를 호소하십니다. 마음에 수술을 받고 땅을 새로 갈아 엎고 씨를 심으라고 촉구하십니다(4,3).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적군이 쳐들어와 이스라엘을 쑥밭으로 만들어 놓으리라고 일러주십니다. 회개인가, 심판의 재앙을 받을 것인가 여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달려 있다고 분명하게 일깨워주신답니다.

완고한 백성과 계약의 파기(예레 7,1-12,17)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의 내용은 무엇입니까?(7,23;11,4)

다시금 예레미야는 성전을 믿고 안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헛된 희망을 고발합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생활태도를 고치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 번제와 친교제 같은 제사보다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7,23)입니다. “나의 뜻을 깨치고 사랑과 법과 정의를 세상에 펴는 일”이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9,23).

그러나 잘못을 뉘우치는 자 하나 없고 하느님이 세운 법을 아는 자 역시 하나도 없다고 고발합니다(8,6-7).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이 내가 내려준 법을 저버리고 내 말을 듣지도 않았으며 그대로 살지도 않았기 때문에”(9,12) 재앙을 당하리라고 다시금 선고하십니다. “그런 자들은 말로는 하느님과 가까운 체하면서 속으로는 멀리 떠나가는 것들”(12,2)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의 죽음을 슬퍼하며 밤낮으로 울고 싶어하지만(8,23), 고향인 아나돗 사람들은 불길한 예언을 한다하여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예언자의 삶은 하나의 상징(예레 13,1-19,15)

예레미야가 보여준 잠방이와 오지그릇의 상징은 무엇을 뜻합니까?(13,1-11;19,1-11)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계속 고발합니다. 그 결과로 닥칠 대기근과 무서운 전쟁도 예언합니다. 잠방이를 묻고 오지그릇을 깨며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이런 예언을 전하는 예레미야는 “주님 때문에 수모를 받고” 끝없는 괴로움을 당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은 예언자가 의지한 분은 오직 하느님뿐입니다. “저는 주님 한 분만을 기립니다”(17,14).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너를 도와 구하여 주리라”(15,20)고 약속하십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힘은 바로 하느님, 그분으로부터만 나옵니다.

새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

(예레 20-35장)

유다의 왕과 예언자의 운명(예레 20,1-24,10)

하느님이 세워주시는 참목자는 어떤 이름으로 불립니까?(23,6))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심판을 촉구하는 예레미야는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당시의 사제와 예언자들은 모두 유다에 별탈이 없으리라고 선포했으며, 백성들은 이들의 말을 환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레미야를 혹세무민하는 거짓 예언자로 몰아 때리고 가둡니다. 예레미야는 모든 사람에게 “웃음거리, 놀림감, 사면초가”가 된 자신의 고통이 너무 커서 하느님께 애소합니다. 하지만 그의 “뼛속에 갇혀 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그는 손을 들고 맙니다”(20,7-10). 하느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자, 그가 예언자입니다.

요시아 왕 이후 유다의 왕으로 있었던 여호아하즈, 여호야킴, 여호야긴, 시드키야와 함께 거짓 예언자 모두에게 하느님의 심판이 예고됩니다. 백성의 목자인 그들이 하느님과의 계약을 저버리고 가난한 자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악행을 회개하지 않는 탓입니다. 아울러 그들을 대신하여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펼 메시아가 오리라는 희망의 복음도 선포됩니다.

참예언자 예레미야(예레 25,1-29,32)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을 전하다 살해당한 예언자는 누구입니까?(26,20)

하느님께서는 유다의 죄악에 대한 심판과 함께 칠십 년이라는 처벌기한도 밝히셔서, 당신의 구원계획이 계속 될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지도자나 백성들은 여전히 마이동풍격입니다. 예레미야가 “이십삼 년을 하루같이 전하였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25,3). 야훼 하느님은 “내 말을 따라 살아라, 내가 세워준 법대로 살아라, 나의 종 예언자들의 말을 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26,4) 재앙을 내리겠다고 거듭거듭 일러주었지만,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재앙을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오직 우리의 회개만을 기뻐하시고 기다리고 계실 뿐입니다

유다는 회복되리라(예레 30,1-35,19)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는 새 계약의 내용은 무엇입니까?(30,22; 31,1.33 ; 32,18)

예레미야 30-33장은 흔히 ‘위로의 책’ 또는 ‘구원신탁’이라 불립니다. 의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유다의 죄를 법대로 벌하시지만, 그 고난의 때를 겪은 다음에는 다시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누구 하나 기억해주는 이 없어도 하느님은 잊으시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찾아오셔서 새 계약을 맺어 주시리라고 밝히십니다. 우리 인간들이나 하느님을 잊어 버리지, 하느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심을 이사야와 함께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일러 줍니다. “나는 한번도 잊은 일이 없었다”(31,20).

근위대 울 안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가 땅을 사서 옹기그릇에 넣어 봉인한 것도 하느님께서 장차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시드키야와 그 신하들은 위기가 닥치자 하느님의 율법대로 노예를 다 풀어주었다가, 위기가 사라지자 다시 잡아들여 종으로 삼는 죄를 범합니다. 몸에 밴 그릇된 생활양식을 뜯어 고쳐 바로 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인간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예레 36-52장)

마침내 성벽은 뚫리고(예레 36,1-45,5)

예레미야의 목숨을 구해준 에디오피아 사람은 누구입니까?(38,7-13)

유다 왕 여호야킴 시대에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록한 다음 단식일에 성전에 가서 읽어주라고 명하십니다. “내가 온갖 재앙을 내리기로 하였다는 말을 듣고 유다 가문이 그 못된 생활태도를 고칠지 아느냐?”(36,3) 하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 말씀을 다 듣고 나서도 겁을 내지 않았고 옷을 찢지도 않았습니다”(36,24). 오히려 예레미야와 서기 바룩을 잡아오라고 지시합니다.

그렇지만 여호야킴의 아들 여고니야(여호야긴)는 즉위한 지 몇 달이 안돼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여호아하즈의 동생인 시드키야가 새 왕으로 앉혀졌습니다. 시드키야도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바빌론에 대항하려고 했습니다. 바빌론에 항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말한 예레미야는 민족배반자로 몰려 구덩이에 갇혀 죽을 뻔 하다가 간신히 목숨만 구한 채 갇혀 지내게 됩니다.

마침내 시드키야 11년 4월 (기원전 587년 7월)에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유다는 멸망당합니다. 주님께서 이십 여 년 이상 타일러주신 말씀을 듣지 않은 채 파멸의 길을 간 것입니다. 민족의 비극을 목격한 예레미야는 바빌론이 세운 지도자 게달리야가 암살당한 뒤, 요하난 일파에 끌려 이집트로 끌려갔습니다.

하느님은 만국의 운명을 결정하시니

(예레 46,1-51,64)

하느님께서는 어떤 자격으로 만백성의 운명을 결정하십니까?(46,18; 51,57-58)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주변 민족들의 운명에 대해서도 일러주십니다 먼저 이집트가 바빌로니아에게 형편없이 당할 터인데, 이는 바빌로니아가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벌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울러 야곱의 후손들은 고향에 돌아와 살게 되리라고 희망을 던져주십니다. 이어 불레셋족, 모압,암몬, 에돔, 다마스커스, 아랍 부족들, 엘람 등 주변 민족들의 몰락을 예언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당시 최강대국 바빌론 역시 다른 나라에 의해 멸망당하리라고 밝히십니다. 한 때 바빌론은 “야훼의 손에 들린 금술잔, 무기, 망치”(51,7.20)로 쓰였으나, 이제 “벌을 면할 길 없는 바빌론의 죄가 하늘에 닿았고 구름에 미쳤기”(51,9)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뭇 민족의 왕이십니다.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 할지라도 그분의 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멸망은 국가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충실히 지켜 약한 이(나라)를 얼마나 돌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루어지고(예레 52,1-34)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간 유대인은 모두 몇 명입니까?(52,28-30)

부록으로 덧붙인 이 마지막 대목에는 예루살렘이 함락될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왕과 사제와 기술자 등 지도층은 바빌론으로 끌려 갔습니다. 이집트 등 주변 각 나라로 흩어져 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유대인들의 흩어짐(디아스포라)이 본격적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이 바빌론 유배는 유대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자 하느님께 돌아온 위대한 각성의 시기였습니다. 끝모를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새 삶을 가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