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성경해설

예언자 요나(Jonas)

그린빌나 2009. 10. 7. 08:44
Jonas라고도 씀.
〈구약성서〉의 12소예언서 중 5번째 책.
유대교 정경에서는 12권을 1권의 책에 포함시켰다. 〈요나〉는 요나라는 예언자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주로 요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나는 니느웨라는 도시의 사악함에 대해 예언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피해 도망치는 고집센 예언자로 묘사된다. 서두에 나와 있는 대로 요나는 아미때의 아들이다. 이 구절은 BC 785년경 여로보암 2세의 재위 기간 동안 예언한 요나(Ⅱ열왕 14 : 25)와 그를 동일시한다. 〈열왕기하〉에 나와 있는 전승 자료의 일부가 초기 〈요나〉와 관련되어 있을 수 있으나, 현재 형태의 책은 후기의 많은 이야기들을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바빌론 유수(BC 6세기) 이후인 BC 5세기나 4세기에 씌어진 듯하며, 〈요나〉가 BC 190년경 작성된 〈전도서〉라는 외경의 소예언서 목록에 나타나므로 확실히 BC 3세기보다 더 늦은 때는 아닐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룻기〉처럼 〈요나〉도 유대교의 배타성에 강조점을 둔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을 따른 그 시대의 특징인 편협한 유대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따라서 그 시대의 유대인들처럼 예언자 요나도 이방인을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싫어한다. 하느님은 그의 그런 태도를 징벌한다. 이 책은 하느님이 미움받는 외국 도시의 주민들에게도 자비를 베푼다는 것을 증명한다. 큰 물고기(레비아단으로 불리며 〈구약성서〉에서 악의 화신으로 사용되는 깊은 곳의 괴물) 사건은 유대 민족의 추방과 귀향을 상징한다.
〈요나〉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예언자 요나는 니느웨(아시리아의 대도시)로 가서 그 도시가 죄악으로 가득 차 징벌을 받을 것임을 예언하라고 하느님에게 명령을 받는다. 요나는 〈나훔〉의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하느님의 심판으로 니느웨는 멸망할 것이라고 느낀다. 따라서 요나는 예언하기를 원치 않는다. 예언을 하면 니느웨는 회개하여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요빠로 내려가 하느님을 피할 생각으로 니느웨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배를 탄다. 예기치 않던 거센 태풍이 배를 강타한다. 뱃사공들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가 파손될 조짐이 보이자 제비뽑기를 했는데 요나가 뽑혔다. 그는 고백하기를 태풍이 인 것은 배에 자신이 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요청대로 그를 바다에 집어던지자 태풍이 가라앉았다. 하느님의 명령으로 '큰 물고기'는 요나를 삼켰고 그는 3일 밤낮을 고기 뱃속에 있었다. 그가 구원을 위한 기도를 올리자 물고기는 그를 "땅으로 뱉어 내었다"(2장). 다시 명령이 들려왔다. "일어나 니느웨로 가거라." 요나는 니느웨로 가 그 도시에 대해 예언을 해 니느웨 왕과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게 되었다.
그때 요나는 화가 났다. 재앙이 내리기를 원하는 요나는 그 도시가 파괴될 것을 기다리며 그 도시 밖으로 가서 앉는다. 밤새 한 식물(피마자)이 자라서 그늘을 드리워 요나가 더위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그 식물은 큰 벌레가 쏠아 먹어 죽게 된다. 요나는 그 식물이 죽은 데 대해 비통해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결정적인 말로 깊이 타이른다.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밤 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워하느냐? 이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12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4장) 요나는 존 버나드 플래니건과 앨버트 핀캠 라이더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의 주제가 되어왔다. H. 멜빌의 〈모비 딕 Moby Dick〉의 9장은 요나에 대한 설교와 찬송이다.
요나서
1. 문학 유형 :
요나서는 일종의 미드라시(Midrash), 즉 역사서술적 설명을 띤 설화로서 종교적 교훈을 담고 있다. 신학적으로 보아 이 교훈 설화는 가장 중요한 예언서이지만 역사적 문헌으로 간주하지는 않으니 그 역사적 신빙성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는 2열왕 14:25에 나오는 인물인데 요나서에는 그의 고향 갓 헤페르(Gat-Hepher)에 대한 언급이 한 번도 없으며, 또 열왕기에 나오는 요나는 여로보암 2세의 국수주의를 옹호하였는데 요나서에서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리아의 조정일지(朝廷日誌)나 다른 문헌에 니느웨에 요나가 파견되었다는 이야기나 니느웨 주민들이 회개했다는 기록도 없으며 또 그런 집단적 회개의 가능성은 생각할 수도 없다.

   요나서에서 과거
예언자들 작품의 영향을 많이 찾을 수 있으니, 요나가 실망하여 하는 말은 예언자 엘리야(1열왕 19:4)의 말과 비슷하고 백성이 회개하여 하느님의 뜻을 돌이키는 장면(요나 3:9-10)은 예언자 예레미야의 어투(예레 4:8, 18:7-8, 23:20, 25:5 참조)와 비슷하며, 또 주님께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시는 것은 에제키엘의 사상과 일치한다(에제 18:23 · 32). 타르시스행 선박이라는 소재도 에제키엘(에제 27:25-28)에서 빌어온 것 같다. 큰 물고기가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킨다는 이야기는 그리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신화에도 나오니 특히 페르세우스(Persee)와 안드로메다(Andromede) 신화에는 페르세우스를 육지로 토해낸 큰 물고기의 뼈 이야기가 있다.

   요나서의 저자는 위와 같은 여러
소재와 사상을 종합하여 작품화시킨 것인데 문장의 리듬과 반복과 짜임새 있는 구조(1:1-3, 1:4-16, 2:1-11이 3:1-4, 3:5-10, 4:1-11과 대비되어 있다)를 보아 대중 상대의 단순한 콩트가 아니라 교육을 위한 의도적인 집필이었음이 분명하다. 다만 2장 3-10절의 시는 본문의 내용과 관계없이 삽입된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이 시에는 요나가 처한 상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구원을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가 요나서가 완성되기 전에 삽입된 것인지 그 후에 삽입된 것인지 그 시기는 밝히기는 어렵다. 또한 4장 5절을 3장 4절에 바로 연결시켜야 옳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지만 현체제가 더 옳다고 하겠다(N. Lohfink).

   2. 집필연대 :
요나서의 집필 연대는 그 문학적 특성이나 신학적 사상을 토대로 추측하는 수 밖에 없다. 볼프(Wolff)는 기원전 4세기 즉 300년경에 집필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체, 어휘 및 아람어 표현(1:5 · 6 · 7, 3:7, 4:11) 등을 미루어보아 유배가 끝난 뒤에 집필된 것으로 보겠다. 물론 로레츠(Loretz) 같은 학자는 아람어식 표현이 아람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팔레스티나 페니키아 방언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반론을 펴기도 하지만, 그 사상과 내용을 미루어보아 기원전 5세기경에 집필되었다는 설이 중론이다.

   3. 메시지 :
요나는 히브리 사람이다(1:9). 그러므로 요나라는 인물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한다. 그리고 요나란 ‘비둘기’란 뜻이므로 이름 자체가 죽치기 좋아하는 성격을 나타내며, 어리석고 우둔함을 강조한다(호세 7:11 참조). 그는 하느님이 아니 계시는 곳 없음을 잘 알면서도(1:9) 하느님을 피해 도망가려고 한다. 하느님이 자비한 분임을 잘 알면서도(4:2) 다른 민족에게 베푸는 자비는 용납하지 못한다. 그리고 니느웨 주민들이 몰살되는 것에는 눈도 깜짝 안하면서 그늘을 만들어 준 아주까리가 시들어 죽자 몹시 화를 내며 불평을 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요나의 인간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이교도들의 구원을 부인하고 자기 나라와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는 자동적으로 하느님과도 담을 쌓는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타적 사고방식을 타파하고자 한다. 아마도 저자는 지혜문학에 통달한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지성인이었으리라. 당시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 때 유배지에서 돌아온 공동체는 더욱 폐쇄적인 태도를 취했으므로 요나서는 유대 공동체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민족성을 타파하기 위해 집필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요나서는 제2 이사야의 사상과 같이 범세계적인
하느님의 다스림(이사 60-62장, 하깨 2:7, 즈가 8:23, 말라 1:11 참조)과 ‘하느님의 이스라엘’(로마 9:6-8, 29-30, 갈라 6:16)의 도래를 전개시키는 준비서라 하겠으니 요나서의 메시지가 지혜문학적이고 미드라시에 속하지만 면면히 흐르는 그 예언자적 특징은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徐仁錫)

   [참고문헌] C.A. Keller, Joel, Abdias, Jonas(Commentaire de l'Ancien Testament, XIa), Neuchatel 1965 / W. Rudolph, Joel, Amos, Obadja, Jona, KAT, XIII/2, Gutersloh 1971 / G.H. Cohn, Das Buch Jona im Lichte der biblischen Erzahlungskunst(Studia Semitica Neerlandica, 12), Assen 1969 / A. Feuillet, Les Sources du livre de Jonas, RB, 54(1947), pp.161-186; Le Sens du livre de Jonas, RB, 54(1947), pp.340-361; Jonas, SDB, t. IV/N. Lohfink, Jona ging zur Stadt hinaus. Jn 4, 5. BZ, 5(1961), pp.185-203 / O. Loretz, Herkunft und Sinn der Jona-Erzahlung, BZ, 5(1961), pp.18-29 / A. Vaccari, II genera litterario del libro di Giona in recenti Pubblicazioni, Divinitas, 6(1962), pp.231-256 / H.W. Wolff, Studien zum Jonabuch(Biblische Studien, 47), Neukirchen 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