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매일복음묵상

연중 제29주간 금요일(20101022)

그린빌나 2010. 10. 22. 09:38

한 분의 손에서 빚어진 작품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는 것은 천지의 창조주가 하느님이시고 나 자신이 피조물임을

겸허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나의 근원을 아는 것이다.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 할 줄 모르느냐 ? 왜 올

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
자연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운다. 인간은 삶을 다하고 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 는 말씀을 깊이 이해한다면 바로 인간의 존재가 자연과 하나이고 한 분의 손에서

빚어진 작품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겠다고 너를 죽일 때, 결과는 죽음이다. 더불어 같이

살아갈 수는 없을까 ?
이것이 바로 오늘 말씀하시는 너와 나의 화해다. 조금씩 양보하는 마음이다. 그 처지를 조금씩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나에서 떠나 너를 아껴주는 마음이다. 이것이 너와 나를 살리는 더불어 같이 사는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자연이 사람을 살리고 있음을 잊은 지 오래다. 사람이 뱉어낸 오물로 병들어 가고 있는 지구의 아픔을

의식하지 않은 지 오래다. 자연 순리대로 흘러가는 강을 막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며 천년만년 살겠다고 ….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무언가, 어디엔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기 마련이며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며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때 창조주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라는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박향숙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유교 사상의 핵심 내용들 가운데 ‘시중’(時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주재하는 하늘의 때에 딱 들어맞게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역』(周易)은 이 ‘시중’을 잘 실천할 수 있도록 참고 도서 역할을 하는 책입니다. 이 개념은 어느 것이 하늘의 뜻이고 아닌지를 잘 식별하여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전통적인 유가의 가르침이지요.
굳은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 가운데에서도 더러는 운명 철학관에 가서 이른바 ‘사주팔자’나 ‘운수’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현실은 답답하고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철학관을 찾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약해 흔들리거나, 주님의 뜻에 충실하지 못하고 요행을 바라거나, 희망을 주님께 두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고 호통을 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입니다. 무엇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옳은지 아닌지를 식별할 줄 알면, 운수니 사주팔자니 하는 따위를 찾을 필요가 없을 겁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주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이 시대에 참된 신앙인의 삶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굿뉴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오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린다고 감추어지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 하나라도 더 먹어야 또 더 많이 가져야 하는 운동경기라면 욕심을 부려야겠지만 그런 경기하듯 살아가는 것이 인생은 아니기에 비워가는 것을 배우는 것 즉 욕심을 비우고 있는 것을 나누고 자연과 더불어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 인생이지요. 오늘 하루 내가 가진거 중에서 무엇을 얼마나 비워낼 수 있을지 비움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청하면서 잠시 묵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