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연의 아침엽서

찜통

그린빌나 2006. 5. 26. 09:49
내가 조교로 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는
청소를 하시다가 사고로
오른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셨다

넘실대는 요강 들고 옆집 할머니 오신다
화기 뺄 땐 오줌을 끓여
사나흘 푹 담그는 것이 제일이란다
이틀 전에 깁스를 푸신 어머니,
할머니께 보리차 한 통 내미신다

호박 넝쿨 밑으로 절뚝절뚝 걸어가신다
요강이 없는 어머니
주름치마 걷어올리고 양은 찜통에 오줌 누신다
찜통목 짚고 있는 양팔을 배려하기라도 하듯
한숨 같은 오줌발이 금시 그친다

야외용 가스렌지로 오줌을 끓인다
찜통에서 나온 훈기가 말복 더위와 엉킨다
마당 가득 고인 지린내
집밖으로 나가면 욕먹으므로
바람은 애써 불지 않는다
오줌이 미지근해지기를 기다린 어머니
발을 찜통에 담그신다 지린내가 싫은 별들
저만치 비켜 뜬다

찜통더위는 언제쯤이나 꺾일는지
찜통에 오줌 싸는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는 홀어머니
소일거리 삼아 물을 들이키신다

막둥아, 맥주 한잔 헐텨?
다음주까정 핵교 청소일 못 나가먼 모가지라는디



젊은 시인 박성우의 시다. 전주에서 가끔, 저녁 무렵 선술집 같은데서 만나는 착해빠진 후배시인인데, ‘내가 조교로 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를 시의 제재로 삼는 솔직함이 이 시인의 강점이자 힘이다.
시의 표면에 시인이 드러내지 않은 은근한 것 한 가지. 오줌과 보리차와 맥주, 이 세 가지의 빛깔이 유사하다는 것.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와 옆집 할머니와 시인이 한 마음이듯, 요강과 찜통과 지린내와 별들이 한통속이듯.

'유상연의 아침엽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랑나비돛배  (0) 2006.06.02
왜 망했을까?  (0) 2006.05.30
용기는 자신을 던지는것  (0) 2006.05.25
빈배  (0) 2006.05.12
작은것이 쌓여서  (0) 2006.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