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명작 속 논술비법 찾기]동물농장

그린빌나 2006. 9. 4. 10:19

[명작 속 논술비법 찾기]동물농장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의 명작에는 시대정신이 녹아 있다. 대입 논술 기출문제를 살펴보면 이 같은 명작의 일부를 발췌한 유형이 많다. 이 글을 읽고 시대정신을 찾아낼 수 있는지 측정하려는 것이다. 이번 주부터 한 권의 명작이 실제 논술문제에 어떻게 접목되는지 살펴보는 ‘명작 속 논술비법 찾기’를 연재한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이 지은 ‘동물농장’은 1998년 서울대 정시 논술에 단독 제시문으로 출제됐다. ‘복서’라는 말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발췌한 뒤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문제들이 이 글에 암시돼 있는지 글의 내용에 근거해 밝히고, 복서의 죽음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하라고 요구했다.

이 소설은 동물을 통해 인간 세상을 풍자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 속의 동물이나 상황이 상징하는 바를 파악해내면서 읽는 심층적 독해가 요구된다.

주어진 장면에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복서는 상황에 대한 비판적 판단을 배제한 채 현실에 순응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인간상을 대변한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사악한 독재자의 치하에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일에 따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거나 또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면서 끝까지 이용만 당하게 된다.





◇2000년 소설 ‘동물농장’을 원작으로 한 영화 ‘동물농장’의 포스터. 세계일보 자료사진


논제는 절대 권력을 지닌 지배층과 무지한 피지배층의 지배구조 문제에 주목하면서 이에 수반되는 제반 사항들에 대한 수험생의 다양한 사고를 측정하고자 하는 의도로 분석된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면 부패한 권력을 지닌 자들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이들은 대중의 알 권리를 억압하고 그들의 무지를 이용해 권력을 유지한다.

많은 학생들이 문제 상황에만 주목할 뿐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다. 그 이유는 지배자들의 자발적 변화를 요구하는 당위적인 결론으로 논술을 마무리 짓기 때문이다. 막연히 민중이 자각해야 한다는 논리도 적절하지 않다. 지배자 스스로 변화하기 어렵다는 점,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민중 스스로 상황을 깨닫는 것 또한 쉽지 않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늙은 당나귀 ‘벤자민’이나 말 ‘클로버’와 같이 선각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자들에 주목하자. 동물들의 피억압 상황이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착안해 동물들이 합리적 판단을 내리는 기반이 되는 앎의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 자유를 쟁취하는 데 따른 희생을 감수하는 용기 또한 기억한다면 논거를 보다 치밀하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연 비타에듀 에플논구술硏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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