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매일복음묵상

연중 제29주간 월요일(20101018)

그린빌나 2010. 10. 18. 09:26

여성 선교사


그때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

들을 보내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

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

하여라.”

식민지 개척시대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활발하게 선교를 펼친 남자 수도회는 예수회, 여자수도회는 우르술라

회와 노틀담수녀회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당시 유럽 본토에서 여성들은 마녀사냥으로 숨죽이고 있어야 했고,

공적인 신앙생활이나 봉사활동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에 유럽 여성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는 열망을 가지고 신대륙으로 찾아듭니다.
이 여성 선교사들은 “전통적 수도원의 네 가지 실천 규범인 봉쇄, 성무일도 낭송, 금욕 실천, 전통적 수도복에

매달리는 대신에,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떠나라.’ 는 격언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보살피고, 노인과 버림받은 이들을 지원하며, 어린 소녀들을 교육” (「여성과 그리스도교 (3)」) 시키는 데 헌신

했습니다.
특히 이들이 꾀한 새로운 과제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부문은 교육이었습니다. 당시는 “여성을 위한 일반교육과

교양 및 실습을 위한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이 여성 선교사들은 여기저기서 자료를 끌어 모아 여성 교육방법을

창안했습니다.” (같은 책) 그리고 여성 교육이 남성 교육만큼이나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르치고 어머니다운 모습과 독립심을 갖도록 준비시킨 이들에게 사회와 교회는, “소녀와

여성은 여성에게만 배워야 하고 교육받은 여성은 결혼해선 안 된다.” (같은 책) 는 강력한 제재를 가합니다. 그

러나 신대륙의 교육받은 젊은 여성이 증가하면서 교회는 점차 여성화되고 민주화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유정원(가톨릭여성신학회)

 

주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세상 속으로 파견하십니다. 파견하시면서 마치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당신의 심정을 밝히십니다. 그리고 모든 고을과 고장을 두루 다니면서, 어떤 집을 방문하였을 때 먼저 ‘평화’를 빌어 주라고 하십니다.
평화는 모두가 바라는 바입니다. 평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평화는 주님께서 주셔야만 참평화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엔 입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자꾸만 군대와 무기를 증강하고, 분열을 조장하고, 적대감을 고조시키며, 분위기를 전쟁 직전까지 몰고 갑니다. 그것은 참된 평화가 아니라, 평화를 가장한 ‘전쟁광’의 미친 짓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일이 아닙니다. 평화는 주님으로부터 와야 하고, 주님께서 곧 참평화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속한 사람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일꾼입니다. 주님께 속했다고 하면서도 평화를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면, 그는 사기꾼이고 거짓말쟁이입니다. 평화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화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고, 이 희망이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끌어 주며,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구원을 보장받게 됩니다.
그러니 일흔두 제자는 오늘날 우리이고,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의 일,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