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쿠데타의 얼굴마담, 추병직
[오마이뉴스 우석훈 기자]
1. 박정희 시스템의 복잡성
우리나라 경제시스템은 70년대 이후로 공급론자와 수요조절론자들이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최적은 아니더라도 하여간 균형 비슷한 것을 만들면서 움직였다. '개발독재'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던 박정희의 시대는 어땠을까? 단순하게 환원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박정희의 경제시스템은 복잡했고, 수출에 대한 강조점만큼 그린벨트나 산림녹화 같은 제도들은 모두 박정희 때 도입된 제도들이다. 우리 말로 번역하기는 어렵지만, 전체주의적 접근이라고 번역되는 소위 'holistic approach'라는 특수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박정희 시절의 경제가 단순하게 개발독재라는 개념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버지'처럼 장기적인 정책적 과제의 눈으로 국토생태의 문제의 틀을 만든 것도 박정희이기는 하다.
2. 노태우에서 DJ까지
박정희 이후에 전두환 시절은 무식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가 건설업에 대한 구조조정 같은 것을 했던 거의 유일한 시기이다. 지표상으로 살펴보면 박정희 후반부에 높아져 82년 25.7%까지 높아졌던 GDP내의 건설지출비율이 88년에 11.7%까지 낮아진다. 역설적이지만 공급론자들이 힘을 못 쓰던 시기가 바로 전두환의 시기이고, 이 시기에 한국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선순환은 놀라울 정도이다.
이 전두환 체계가 무너진 것은 노태우 대통령 때의 일인데, 이 때 처음으로 경제관료의 공급론자들이 본격적으로 정책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고, 이들이 수서개발과 분당, 일산 등의 대규모 개발사업들로 정치 리베이트를 만들게 된다. 이걸 '한국형 군수-건설 결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의 건설사업에 주로 퇴역한 장성들이 개입하면서 공급론자들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적 난제로 남아있는 새만금 사업이 이 시기에 생겨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이러한 군수-건설 결탁체에 개혁을 추진했던 것은 YS였지만, 정권 중기에 힘이 떨어지면서 YS 시대에 다시 GDP 중 건설업 지출의 비중이 26%까지 높아지게 되고, 한국 경제는 IMF 경제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나게 된다.
수요조절론자들이 이 시대에 내세웠던 논리가 몇 가지 있는데, '토지공개념'이 그 한 가지이고, 87년의 9차 개정헌법에 들어간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수도권 공장총량제 등의 수도권 억제 정책이 그 두 가지 축이었다.
수요론자들에 밀려서 사실상 수도권 지역에 대규모 개발이 정지되면서, 거의 10년이 넘게 불안한 균형이 생겨난 셈이다. DJ가 판교개발론자들의 손을 들어줄 때에 더 이상 이런 대규모 개발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단서를 달았던 것도,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수도이전 공약이 결국 대통령을 만들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도 나름대로는 시대적 배경과 관련되어 있다.
3. 노무현 시대의 '미니 신도시'
노무현 대통령은 수도권 지역에 대한 강력한 수요관리라는 전국적 흐름 위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취임 당시 건설업의 비중은 18% 정도였는데, 이 당시에는 '건설업 연착륙'이라는 기조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DJ 시절 IMF 경제위기를 헤쳐나가면서 창업을 쉽게 하기 위해서 건설업 면허의 기준을 대폭 완화시켜준 이후에 건설업체 난립이라는 사회적 과제가 있었다. 건설자본은 불과 3년 전 '연착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죽지만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던 처지였다.
공급과 수요는 적절하게 사회적 균형을 찾아야 하는데, 수요론자들은 생태시스템이라는 새로운 논리를 찾았지만 워낙 기초연구와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노무현 시대에 생태적 담론이 서 있을 공간이 별로 없었다. 그 대신 '집값'과 '서민'이라는 말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맨 앞으로 튀어나온 개념이 바로 '임대주택'이다. 원래 선진국에서의 임대주택은 말 그대로 저소득층의 주거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생겨난 개념이지만, 우리나라의 임대주택은 '정부 돈'으로 건설업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그린벨트를 푸는데 사용되었다.
노무현 정부 내에서 공급론자들은 주로 건교부와 재경부를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었고, 반대편 진영은 '조지스트'로 자신을 소개받고 싶어하던 이정우 전 정책실장을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록 지역에서는 공급론자의 극렬한 지지자임이 분명함에도 전국적으로는 '균형발전'을 내세운 여당의 일각에서는 분명히 수요론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공급론자는 바로 이해찬 전 총리였었다. 역대 총리 중에서 가장 수요조절론자처럼 행동했던 사람은 묘하게도 JP였다. 생각보다 JP는 총리로서는 균형자의 역할을 충실히 한 셈인데, 한편 가장 적극적인 공급론자는 이해찬이었다. 그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골프장 건설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할 정도로 건설업계의 강력한 대변자였다. 그가 결국 골프장에서의 말실수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시기에 이 사회가 찾아낸 불안한 균형은 '수도권 미니 신도시'라는 것이다. 정부 돈을 건설업계에 주기는 주어야겠는데, 행정수도건이 두 번이나 헌법재판소에 올라가는 상황에서 다시 수도권에 대규모 개발계획을 들이밀기는 곤란한 일이다. 2년 가까이 저금리를 몰아붙이면서 전국적인 건설붐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권의 기반에 해당하는 혁신도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면서까지 건설자본에 세금을 보태주자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4. 경제쿠데타, 소리 없이 종료하다
정치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책적인 레임덕은 북핵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첫 번째 사건은 북핵과 함께 내년도 경제성장에 대한 하락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부터이다. 이 때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경기부양 정책의 필요성이 경제팀 내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대규모 공공사업의 필요성에 대해서 분위기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북핵 위기는 핑계에 불과하다. 어차피 2007년에는 대선이 있는 해이기 때문에 핑계만 복잡하지 대규모 사업들이 기획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 역사는 5년을 주기로 그렇게 움직여왔다.
그 한 가운데에서 튀어나온 것이 바로 수도권 대규모 개발계획이다. 원래의 논리를 따라가자면, 2007년에는 올해의 북핵 사태 이후로 정상적인 경제운용이 후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무엇인가 부양정책이 필요할 것이고, 그렇다면 올해에는 뭔가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사건은 집값 안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다만 2007년도에 어떤 방식으로 정부가 사회적 논란없이 추가적으로 돈을 풀어서 경기부양을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원칙적으로 이 경기부양이 반드시 건설사업일 필요는 없다. 연구개발에 돈을 써도 되고, 복지사업을 벌여도 좋고, 혹은 하다못해 지역에 대규모 도서관이나 문화시설을 만들어도 원칙적으로 효과는 같다.
5. 바보 추병직
수도권의 대규모 아파트 건설은 공영건설의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고, 하다못해 택지라도 정부가 조성하게 될 것이므로, 어차피 세금을 쓰는 경기부양책의 한 종류인 것은 맞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업은 빨라야 5년은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소위 '격차 효과(time lag)'라는 것이 있어서 2007년에 효과를 발휘할 재정정책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재경부를 장악한 공급론자들이 끌어들인 것이 건설교통부 장관인 추병직이다.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알고서도 속아준 것인지, 추병직은 이런 정책사업이 집값을 안정시켜줄 것이라는 철석 같은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공식적인 결정이 나오기 며칠 전에 미리 기자실을 방문해서 장관이 직접 "이제 우리가 집 많이 지을 거예요"라고 발표하는 엽기적인 일이 벌어진다. 원래 부처마다 공보실장이 있기 때문에 장관이 직접 기자실을 방문해서 설명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결과적으로 추병직은 자신이 바보임을 온 국민들에게 알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3일 먼저 알거나 3일 늦게 안다고 해서 부동산 폭등이 없어질까? 그렇지는 않지만 너무 감격해서 바보 추병직이 기자들에게 며칠 먼저 알리는 일을 했다고 해서 현재의 사태는 전부 추병직에게 쏠리게 되었다.
미안하지만 그는 희생자에 불과하고, 공급론자들이 그야말로 드디어 대통령을 '제끼고' 정책기조를 장악하게 되는 사실상의 쿠데타에 얼굴마담으로 동원되었을 뿐이다. 어차피 지금 올라가는 집값은 가수요이기 때문에 실수요와 아무 상관도 없이 누가 5년간 장기투자를 할 수 있을 만큼 돈을 굴릴 수 있는 여력이 있는가에 의해서 결정된다.
추병직은 미리 일부 사실을 알렸을 뿐이지, 그가 말을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가격폭동이 며칠 먼저 오는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6. 제거된 세력은?
건설교통부는 장관이 바뀌든 바뀌지 않든 건설예산과 건설사업만 있으면 상관하지 않는다. 건설회사들은 수도권에 짓든 지방에 짓든 하여간 대규모 건설만 있으면 되고, 정부가 '주택안정'이든, '강남대체'든 혹은 '균형발전'이든 아무런 핑계만 만들어내고 세금만 자신들에게 주면된다. 이들에게 앞으로 수 년간은 '꽃피는 봄날이 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전쟁만 있으면 되는 미국의 군수자본과 한국의 건설자본은 움직이는 방식이 똑같다.
사실 진짜로 문제가 생긴 사람들은 '행복도시'라고 자신들이 부르는 바로 그 국토의 균형발전을 정치적 뿌리로 하고 있던 사람들이고, 정부 내에 '수요관리'라는 힘을 직간접적으로 형성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세력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다. 묘하게도 그렇게 되었다. 북핵에서 시작되어 가을 이사철을 맞아 생긴 일시적 부동산 가격상승 그리고 국민들의 강남에 대한 적대감을 버무려 한 달 만에 재경부와 건설교통부의 일부 공급론자들이 사실상 자신들의 쿠데타를 성공시킨 셈이다.
우리나라의 국민 절반 이상이 사실상 수도권에 산다. 인천 검단지구의 개발이 완료되면 인천시민의 1/4이 이 지역에 수용될 정도의 규모이다. 물론 말도 안 되지만, 불과 2년 전에 '미니 신도시라도' 지을 수 있게 해달라는 사람들이 이 한 달 만에 완전히 정책 결정권을 장악하고, '앞으로도' 그리고 '계속' 지을 것이라는 점을 정책적 기조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경제학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파트가 35평을 넘어서면서부터 한나라당 지지자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한나라당-공급론자-큰 아파트'로 이어지는 이 세력이 사실상 사람들이 북핵 문제로 안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동안에, 이 사건을 활용해서 지난 20년간 형성된 균형을 갑자기 바꾸고 온 국가를 다시 투기경제로 이끌게 된 셈이다.
노무현과 그 주변 정치인들은 사실상 이제 설 자리가 없어진 셈이고, 이미 불안한 균형이 깨어진 이상 수도권 억제를 통한 지방경제의 회생이라는, 온갖 개발주의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지지했던 하나의 패러다임이 깨진 셈이다. 검단이든 파주든, 그리고 기회가 닿는대로 '무조건 집을 짓겠다'는 이 거대한 흐름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사실상 단 한 가지이다.
그렇게 짓고 싶으면 자기 돈으로 짓고, 품질에 따라 판매하면 된다. 그러면 망하는 사람도 생기고, 부도도 나고, 나름대로는 시장 장치가 작동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택지개발에서 기반시설까지 정부가 해주고, 분양시장까지 나름대로 국가가 관리해주니까 전형적인 '정부 관리시장'인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무식하기는 해도 이 정도로까지 황당하지는 않지만, 이제 공급론자들이 실질적으로 장악한 정부 내에서 이 흐름을 반전시키기 위해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움직여줄 정치인들도 사실상 제거된 셈이다.
7. 반전의 계기는 있는가?
경제기조는 한 번 결정되면 잘 번복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제는 건설자본에 대해서 경쟁할 다른 자본도 사실상 무너진 한국 경제에서 끝없이 집값을 올리고, 끝없이 국비를 투입하고, 끝없이 확장해서 결국은 폭발하고 마는 현재의 메커니즘은 정지하지 않는다. 불안한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수도권 지역으로 모든 정책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방정부도 똑같이 대규모 건설사업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열심히 집 짓고 있으면 경제가 좋아지는가? 그런 적은 역사상 없고, 평당 1000만원이 넘어갈 오를 대로 오른 아파트들을 죽어라고 공급한다고 해서 하루 살기도 버거운 서민들의 주거권이 안정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판교 충격 하나만으로도 온 국토의 집값이 들썩거리고 그 충격을 아직도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데, 건설자본의 '안녕'과 공급론자들의 '출세'를 위해서 국민경제가 희생하고, 국민들이 고통받는 이 시스템은 폭발하기 전까지 자체적으로 멈추지는 않는다. 네덜란드의 튤립 사태에서 29년의 대공황, 그리고 일본의 90년대의 '헤이세이 공황'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경제는 일단 시작된 투기경제를 자체적으로 정지시켜본 역사가 별로 없다.
사실상 노무현식 '개발 민주주의'가 종료하고, 재경부의 '개발 독재'가 시작된 것은 이제 1주일 정도 된 셈이고, 그 사이에서 바보 추병직이 이 모든 뭇매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셈이지만, 정말로 웃고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교통영향평가나 사전환경성검토 혹은 예비타당성평가 같은 개발 독재를 잠시 제어하기 위한 장치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사실상 노무현 3년 내내 이런 제도들은 이미 유명무실화한 상태이고, 재경부에서 "집 짓고 싶다"고 하면 막을 수 있는 제도도, 여론도, 그리고 정치인도 이미 이 땅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8. 중산층, 결국 몰락할 것인가?
재경부의 수도권 대규모개발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고가 아파트의 일반화'라는 점 때문이다. 시스템으로 크게 보면 중산층의 평균저축으로 평균 주택보유 가능기간 같은 걸 생각해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식 계산대로라면 평당 500만원이 넘어가면 '건전한 중산층'의 '상식적 삶'으로 집을 보유하기는 어려워진다. 세금을 쓰면서 '주거권'을 위해서 정책을 세운다면 당연히 이 건축비를 낮추는 쪽으로 정책방향이 잡혀야 하고, 그래서 최소한 중산층 정도에서는 주거에 대해서 불안을 느끼지 않아야 민간소비와 금융시장 모두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런데 재경부의 총지휘 아래 그래봐야 겨우 아파트 짓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면서 평당 1200만원이니 평당 1300만원이니 하는 예측치가 나오는 이 상황은 미친 짓이다. 서울에서도 60Km 혹은 100kM 이상씩 떨어진 곳에서 이렇게 높은 주택시세가 형성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는데, 그 높은 가격을 이 나라의 경제팀이 진두지휘하면서 만들어낸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재경부나 건설교통부의 사무관들이나 서기관들이라고 해서 자신들이 실제로 밑그림을 그린 이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을까? 1000만원만 잡아도 3억원인데, 따로 부패하기 전에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이다. 이렇게 정부 시스템이 죽어라고 아파트 지어봐야 남는 것은 투기경제이고, 중산층의 몰락이다. DJ 이후 '작은 정부'라고 떠들어댔지만, 이제 공급론자들이 장악한 재정경제부는 너무 힘이 막강해져서 아무도 제어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이 하는 일의 마지막에는 중산층의 몰락이 자리하고 있다는 이 현실이 막막하기만 하다.
중산층마저 무너지게 되면 사회의 인심도 극도로 흉흉해지고, 수요관리 같은 논리들은 설 곳이 없다. 사실상의 이 경제쿠데타는 불안한 균형을 무너뜨린 셈인데, 이 상황이 북핵문제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와중에 발발한 것이라서 너무 어이가 없다.
그렇다면 개인은 집을 사야하는가? 바보 추병직 같은 사람이 또 건교부 장관을 할 것이고, 이미 사실상의 쿠데타로 정책입안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재경부의 공급론자들의 권력은 끝 갈 데가 없기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지금은 집을 사야한다. 그리고 재경부 관리들은 우습게 생각하지만 나름대로는 '현명한 국민'들은 이 사실을 대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국민경제는 폭발을 향해 가지만, 대형 건설사들은 지금 쾌재를 외치면서 비로소 자신들의 시대가 왔다고 환호할 것이다.
'바보 노무현'으로 상징되었던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한 시대가 이렇게 해서 도래한 셈이다. 이 시대가 언제까지 갈 것인가? 30년을 격차로 일본과 한국의 역사가 반복된다고 하지만, 너무 복사판처럼 80년대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똑같다. 일본은 결국 경제부처를 통상성에 통폐합시킬 정도로 이 공황을 만들어낸 경제관료들의 힘을 뺀 다음에야 '헤이세이 공황'으로부터 탈출하게 되었다.
지금 한국의 경제관료는 중산층과 서민의 적이지만, 한국의 중산층은 일본의 중산층에 비하면 너무 힘도 없고, 자신들의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사실상의 경제쿠데타에 대해서 한국이 대응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재경부의 신자유주의? 이건 신자유주의도 아니고, 5년마다 손님처럼 왔다갔다 하는 대통령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완전히 습득한 일부 고급 경제관료들의 '환관정치'에 다름 아니다. 지난 3년간 가난한 서민들을 말살시켰던 이 관료들이 이제는 중산층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이것까지 80년대 일본의 경제관료들의 폐해와 꼭 닮아있다. 바보 추병직을 사람들이 몰아붙이는 이 시기, 아파트와 집값 그리고 북핵위기를 매개로 재경부를 축으로 한 공급론자들이 대한민국의 권좌에 올랐다.
여담이지만, 이런 변화가 2007년 대선 이후에 한나라당의 집권과 함께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예상은 틀리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허깨비가 된 현 상황에서 변화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1년 이상 빨리 와버린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디버블링 프로세스밖에는 없어 보인다. 이건 좌파나 우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의 건전성에 관한 문제에 가깝다. 사실상의 경제쿠데타가 진행된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전혀 건전하지 않은 세력이 집단 투기로 시스템을 몰고 가는 중이다.
/우석훈 기자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우석훈님은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입니다. 연세대와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현대환경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초록정치연대 등을 거쳐 현재 성공회대 외래교수로 있습니다. 펴낸 책으로는 <아픈 아이들의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등이 있습니다.
▲ 공급론자에 의해 장악된 노무현 정부에 이 사회가 찾아낸 불안한 균형은 '수도권 미니 신도시'라는 것이다. 사진은 굴착기와 대형트럭이 동원된 가운데 공사가 한창인 경기도 성남시 판교택지개발현장. |
ⓒ2006 오마이뉴스 권우성 |
1. 박정희 시스템의 복잡성
우리나라 경제시스템은 70년대 이후로 공급론자와 수요조절론자들이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최적은 아니더라도 하여간 균형 비슷한 것을 만들면서 움직였다. '개발독재'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던 박정희의 시대는 어땠을까? 단순하게 환원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박정희의 경제시스템은 복잡했고, 수출에 대한 강조점만큼 그린벨트나 산림녹화 같은 제도들은 모두 박정희 때 도입된 제도들이다. 우리 말로 번역하기는 어렵지만, 전체주의적 접근이라고 번역되는 소위 'holistic approach'라는 특수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박정희 시절의 경제가 단순하게 개발독재라는 개념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버지'처럼 장기적인 정책적 과제의 눈으로 국토생태의 문제의 틀을 만든 것도 박정희이기는 하다.
2. 노태우에서 DJ까지
박정희 이후에 전두환 시절은 무식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가 건설업에 대한 구조조정 같은 것을 했던 거의 유일한 시기이다. 지표상으로 살펴보면 박정희 후반부에 높아져 82년 25.7%까지 높아졌던 GDP내의 건설지출비율이 88년에 11.7%까지 낮아진다. 역설적이지만 공급론자들이 힘을 못 쓰던 시기가 바로 전두환의 시기이고, 이 시기에 한국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선순환은 놀라울 정도이다.
이 전두환 체계가 무너진 것은 노태우 대통령 때의 일인데, 이 때 처음으로 경제관료의 공급론자들이 본격적으로 정책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고, 이들이 수서개발과 분당, 일산 등의 대규모 개발사업들로 정치 리베이트를 만들게 된다. 이걸 '한국형 군수-건설 결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의 건설사업에 주로 퇴역한 장성들이 개입하면서 공급론자들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적 난제로 남아있는 새만금 사업이 이 시기에 생겨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이러한 군수-건설 결탁체에 개혁을 추진했던 것은 YS였지만, 정권 중기에 힘이 떨어지면서 YS 시대에 다시 GDP 중 건설업 지출의 비중이 26%까지 높아지게 되고, 한국 경제는 IMF 경제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나게 된다.
수요조절론자들이 이 시대에 내세웠던 논리가 몇 가지 있는데, '토지공개념'이 그 한 가지이고, 87년의 9차 개정헌법에 들어간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수도권 공장총량제 등의 수도권 억제 정책이 그 두 가지 축이었다.
수요론자들에 밀려서 사실상 수도권 지역에 대규모 개발이 정지되면서, 거의 10년이 넘게 불안한 균형이 생겨난 셈이다. DJ가 판교개발론자들의 손을 들어줄 때에 더 이상 이런 대규모 개발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단서를 달았던 것도,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수도이전 공약이 결국 대통령을 만들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도 나름대로는 시대적 배경과 관련되어 있다.
3. 노무현 시대의 '미니 신도시'
▲ 경기도 성남시 판교택지개발현장. 도로 오른편에 분당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
ⓒ2006 오마이뉴스 권우성 |
노무현 대통령은 수도권 지역에 대한 강력한 수요관리라는 전국적 흐름 위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취임 당시 건설업의 비중은 18% 정도였는데, 이 당시에는 '건설업 연착륙'이라는 기조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DJ 시절 IMF 경제위기를 헤쳐나가면서 창업을 쉽게 하기 위해서 건설업 면허의 기준을 대폭 완화시켜준 이후에 건설업체 난립이라는 사회적 과제가 있었다. 건설자본은 불과 3년 전 '연착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죽지만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던 처지였다.
공급과 수요는 적절하게 사회적 균형을 찾아야 하는데, 수요론자들은 생태시스템이라는 새로운 논리를 찾았지만 워낙 기초연구와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노무현 시대에 생태적 담론이 서 있을 공간이 별로 없었다. 그 대신 '집값'과 '서민'이라는 말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맨 앞으로 튀어나온 개념이 바로 '임대주택'이다. 원래 선진국에서의 임대주택은 말 그대로 저소득층의 주거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생겨난 개념이지만, 우리나라의 임대주택은 '정부 돈'으로 건설업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그린벨트를 푸는데 사용되었다.
노무현 정부 내에서 공급론자들은 주로 건교부와 재경부를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었고, 반대편 진영은 '조지스트'로 자신을 소개받고 싶어하던 이정우 전 정책실장을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록 지역에서는 공급론자의 극렬한 지지자임이 분명함에도 전국적으로는 '균형발전'을 내세운 여당의 일각에서는 분명히 수요론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공급론자는 바로 이해찬 전 총리였었다. 역대 총리 중에서 가장 수요조절론자처럼 행동했던 사람은 묘하게도 JP였다. 생각보다 JP는 총리로서는 균형자의 역할을 충실히 한 셈인데, 한편 가장 적극적인 공급론자는 이해찬이었다. 그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골프장 건설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할 정도로 건설업계의 강력한 대변자였다. 그가 결국 골프장에서의 말실수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시기에 이 사회가 찾아낸 불안한 균형은 '수도권 미니 신도시'라는 것이다. 정부 돈을 건설업계에 주기는 주어야겠는데, 행정수도건이 두 번이나 헌법재판소에 올라가는 상황에서 다시 수도권에 대규모 개발계획을 들이밀기는 곤란한 일이다. 2년 가까이 저금리를 몰아붙이면서 전국적인 건설붐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권의 기반에 해당하는 혁신도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면서까지 건설자본에 세금을 보태주자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4. 경제쿠데타, 소리 없이 종료하다
정치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레임덕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책적인 레임덕은 북핵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첫 번째 사건은 북핵과 함께 내년도 경제성장에 대한 하락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부터이다. 이 때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면서 경기부양 정책의 필요성이 경제팀 내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대규모 공공사업의 필요성에 대해서 분위기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북핵 위기는 핑계에 불과하다. 어차피 2007년에는 대선이 있는 해이기 때문에 핑계만 복잡하지 대규모 사업들이 기획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 역사는 5년을 주기로 그렇게 움직여왔다.
그 한 가운데에서 튀어나온 것이 바로 수도권 대규모 개발계획이다. 원래의 논리를 따라가자면, 2007년에는 올해의 북핵 사태 이후로 정상적인 경제운용이 후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무엇인가 부양정책이 필요할 것이고, 그렇다면 올해에는 뭔가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사건은 집값 안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다만 2007년도에 어떤 방식으로 정부가 사회적 논란없이 추가적으로 돈을 풀어서 경기부양을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원칙적으로 이 경기부양이 반드시 건설사업일 필요는 없다. 연구개발에 돈을 써도 되고, 복지사업을 벌여도 좋고, 혹은 하다못해 지역에 대규모 도서관이나 문화시설을 만들어도 원칙적으로 효과는 같다.
5. 바보 추병직
▲ 추병직 건교부 장관. | |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
이 과정에서 재경부를 장악한 공급론자들이 끌어들인 것이 건설교통부 장관인 추병직이다.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알고서도 속아준 것인지, 추병직은 이런 정책사업이 집값을 안정시켜줄 것이라는 철석 같은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공식적인 결정이 나오기 며칠 전에 미리 기자실을 방문해서 장관이 직접 "이제 우리가 집 많이 지을 거예요"라고 발표하는 엽기적인 일이 벌어진다. 원래 부처마다 공보실장이 있기 때문에 장관이 직접 기자실을 방문해서 설명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결과적으로 추병직은 자신이 바보임을 온 국민들에게 알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3일 먼저 알거나 3일 늦게 안다고 해서 부동산 폭등이 없어질까? 그렇지는 않지만 너무 감격해서 바보 추병직이 기자들에게 며칠 먼저 알리는 일을 했다고 해서 현재의 사태는 전부 추병직에게 쏠리게 되었다.
미안하지만 그는 희생자에 불과하고, 공급론자들이 그야말로 드디어 대통령을 '제끼고' 정책기조를 장악하게 되는 사실상의 쿠데타에 얼굴마담으로 동원되었을 뿐이다. 어차피 지금 올라가는 집값은 가수요이기 때문에 실수요와 아무 상관도 없이 누가 5년간 장기투자를 할 수 있을 만큼 돈을 굴릴 수 있는 여력이 있는가에 의해서 결정된다.
추병직은 미리 일부 사실을 알렸을 뿐이지, 그가 말을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가격폭동이 며칠 먼저 오는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6. 제거된 세력은?
건설교통부는 장관이 바뀌든 바뀌지 않든 건설예산과 건설사업만 있으면 상관하지 않는다. 건설회사들은 수도권에 짓든 지방에 짓든 하여간 대규모 건설만 있으면 되고, 정부가 '주택안정'이든, '강남대체'든 혹은 '균형발전'이든 아무런 핑계만 만들어내고 세금만 자신들에게 주면된다. 이들에게 앞으로 수 년간은 '꽃피는 봄날이 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전쟁만 있으면 되는 미국의 군수자본과 한국의 건설자본은 움직이는 방식이 똑같다.
사실 진짜로 문제가 생긴 사람들은 '행복도시'라고 자신들이 부르는 바로 그 국토의 균형발전을 정치적 뿌리로 하고 있던 사람들이고, 정부 내에 '수요관리'라는 힘을 직간접적으로 형성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세력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다. 묘하게도 그렇게 되었다. 북핵에서 시작되어 가을 이사철을 맞아 생긴 일시적 부동산 가격상승 그리고 국민들의 강남에 대한 적대감을 버무려 한 달 만에 재경부와 건설교통부의 일부 공급론자들이 사실상 자신들의 쿠데타를 성공시킨 셈이다.
우리나라의 국민 절반 이상이 사실상 수도권에 산다. 인천 검단지구의 개발이 완료되면 인천시민의 1/4이 이 지역에 수용될 정도의 규모이다. 물론 말도 안 되지만, 불과 2년 전에 '미니 신도시라도' 지을 수 있게 해달라는 사람들이 이 한 달 만에 완전히 정책 결정권을 장악하고, '앞으로도' 그리고 '계속' 지을 것이라는 점을 정책적 기조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경제학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파트가 35평을 넘어서면서부터 한나라당 지지자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한나라당-공급론자-큰 아파트'로 이어지는 이 세력이 사실상 사람들이 북핵 문제로 안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동안에, 이 사건을 활용해서 지난 20년간 형성된 균형을 갑자기 바꾸고 온 국가를 다시 투기경제로 이끌게 된 셈이다.
노무현과 그 주변 정치인들은 사실상 이제 설 자리가 없어진 셈이고, 이미 불안한 균형이 깨어진 이상 수도권 억제를 통한 지방경제의 회생이라는, 온갖 개발주의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지지했던 하나의 패러다임이 깨진 셈이다. 검단이든 파주든, 그리고 기회가 닿는대로 '무조건 집을 짓겠다'는 이 거대한 흐름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사실상 단 한 가지이다.
그렇게 짓고 싶으면 자기 돈으로 짓고, 품질에 따라 판매하면 된다. 그러면 망하는 사람도 생기고, 부도도 나고, 나름대로는 시장 장치가 작동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택지개발에서 기반시설까지 정부가 해주고, 분양시장까지 나름대로 국가가 관리해주니까 전형적인 '정부 관리시장'인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무식하기는 해도 이 정도로까지 황당하지는 않지만, 이제 공급론자들이 실질적으로 장악한 정부 내에서 이 흐름을 반전시키기 위해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움직여줄 정치인들도 사실상 제거된 셈이다.
7. 반전의 계기는 있는가?
경제기조는 한 번 결정되면 잘 번복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제는 건설자본에 대해서 경쟁할 다른 자본도 사실상 무너진 한국 경제에서 끝없이 집값을 올리고, 끝없이 국비를 투입하고, 끝없이 확장해서 결국은 폭발하고 마는 현재의 메커니즘은 정지하지 않는다. 불안한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수도권 지역으로 모든 정책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방정부도 똑같이 대규모 건설사업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열심히 집 짓고 있으면 경제가 좋아지는가? 그런 적은 역사상 없고, 평당 1000만원이 넘어갈 오를 대로 오른 아파트들을 죽어라고 공급한다고 해서 하루 살기도 버거운 서민들의 주거권이 안정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판교 충격 하나만으로도 온 국토의 집값이 들썩거리고 그 충격을 아직도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데, 건설자본의 '안녕'과 공급론자들의 '출세'를 위해서 국민경제가 희생하고, 국민들이 고통받는 이 시스템은 폭발하기 전까지 자체적으로 멈추지는 않는다. 네덜란드의 튤립 사태에서 29년의 대공황, 그리고 일본의 90년대의 '헤이세이 공황'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경제는 일단 시작된 투기경제를 자체적으로 정지시켜본 역사가 별로 없다.
사실상 노무현식 '개발 민주주의'가 종료하고, 재경부의 '개발 독재'가 시작된 것은 이제 1주일 정도 된 셈이고, 그 사이에서 바보 추병직이 이 모든 뭇매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셈이지만, 정말로 웃고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교통영향평가나 사전환경성검토 혹은 예비타당성평가 같은 개발 독재를 잠시 제어하기 위한 장치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사실상 노무현 3년 내내 이런 제도들은 이미 유명무실화한 상태이고, 재경부에서 "집 짓고 싶다"고 하면 막을 수 있는 제도도, 여론도, 그리고 정치인도 이미 이 땅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8. 중산층, 결국 몰락할 것인가?
그런데 재경부의 총지휘 아래 그래봐야 겨우 아파트 짓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면서 평당 1200만원이니 평당 1300만원이니 하는 예측치가 나오는 이 상황은 미친 짓이다. 서울에서도 60Km 혹은 100kM 이상씩 떨어진 곳에서 이렇게 높은 주택시세가 형성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는데, 그 높은 가격을 이 나라의 경제팀이 진두지휘하면서 만들어낸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재경부나 건설교통부의 사무관들이나 서기관들이라고 해서 자신들이 실제로 밑그림을 그린 이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을까? 1000만원만 잡아도 3억원인데, 따로 부패하기 전에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이다. 이렇게 정부 시스템이 죽어라고 아파트 지어봐야 남는 것은 투기경제이고, 중산층의 몰락이다. DJ 이후 '작은 정부'라고 떠들어댔지만, 이제 공급론자들이 장악한 재정경제부는 너무 힘이 막강해져서 아무도 제어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이 하는 일의 마지막에는 중산층의 몰락이 자리하고 있다는 이 현실이 막막하기만 하다.
중산층마저 무너지게 되면 사회의 인심도 극도로 흉흉해지고, 수요관리 같은 논리들은 설 곳이 없다. 사실상의 이 경제쿠데타는 불안한 균형을 무너뜨린 셈인데, 이 상황이 북핵문제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와중에 발발한 것이라서 너무 어이가 없다.
그렇다면 개인은 집을 사야하는가? 바보 추병직 같은 사람이 또 건교부 장관을 할 것이고, 이미 사실상의 쿠데타로 정책입안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재경부의 공급론자들의 권력은 끝 갈 데가 없기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지금은 집을 사야한다. 그리고 재경부 관리들은 우습게 생각하지만 나름대로는 '현명한 국민'들은 이 사실을 대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국민경제는 폭발을 향해 가지만, 대형 건설사들은 지금 쾌재를 외치면서 비로소 자신들의 시대가 왔다고 환호할 것이다.
'바보 노무현'으로 상징되었던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한 시대가 이렇게 해서 도래한 셈이다. 이 시대가 언제까지 갈 것인가? 30년을 격차로 일본과 한국의 역사가 반복된다고 하지만, 너무 복사판처럼 80년대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똑같다. 일본은 결국 경제부처를 통상성에 통폐합시킬 정도로 이 공황을 만들어낸 경제관료들의 힘을 뺀 다음에야 '헤이세이 공황'으로부터 탈출하게 되었다.
지금 한국의 경제관료는 중산층과 서민의 적이지만, 한국의 중산층은 일본의 중산층에 비하면 너무 힘도 없고, 자신들의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사실상의 경제쿠데타에 대해서 한국이 대응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재경부의 신자유주의? 이건 신자유주의도 아니고, 5년마다 손님처럼 왔다갔다 하는 대통령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완전히 습득한 일부 고급 경제관료들의 '환관정치'에 다름 아니다. 지난 3년간 가난한 서민들을 말살시켰던 이 관료들이 이제는 중산층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이것까지 80년대 일본의 경제관료들의 폐해와 꼭 닮아있다. 바보 추병직을 사람들이 몰아붙이는 이 시기, 아파트와 집값 그리고 북핵위기를 매개로 재경부를 축으로 한 공급론자들이 대한민국의 권좌에 올랐다.
여담이지만, 이런 변화가 2007년 대선 이후에 한나라당의 집권과 함께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예상은 틀리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허깨비가 된 현 상황에서 변화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1년 이상 빨리 와버린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디버블링 프로세스밖에는 없어 보인다. 이건 좌파나 우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의 건전성에 관한 문제에 가깝다. 사실상의 경제쿠데타가 진행된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전혀 건전하지 않은 세력이 집단 투기로 시스템을 몰고 가는 중이다.
/우석훈 기자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우석훈님은 <오마이뉴스> 칼럼니스트입니다. 연세대와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현대환경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초록정치연대 등을 거쳐 현재 성공회대 외래교수로 있습니다. 펴낸 책으로는 <아픈 아이들의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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