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의 선택과 쇼핑에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빈티지(vintage)이다. 이를 불어로는 밀레짐(millesime)이라고 한다. 포도주를 담글 때 생산자는 그 해에 수확한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뜻으로 병의 라벨에 연도를 표기한다. 이러한 포도 수확 당해연도의 표지를 빈티지라고 한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포도주의 출생 연도이기도 하다.
와인 애호가들이 빈티지에 별나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포도주의 선택에서 이것이 하나의 잣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빈티지는 포도가 성장하고 익어가는 과정에서 기후의 변화에 대응한 기록이기도 하다.
포도의 성장과 결실은 그 해의 기상조건 즉 바람, 비, 일조량 등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은 포도주의 맛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좋은 포도 수확이 있는 해를 영어권에서는 빈티지 해(vintage year)라고 하고, 불어권에서는 그랑아네(grandes annees)라고 한다. 또한 이 해에 생산된 포도주를 빈티지 와인(vintage wine)이라고 한다.
와인을 즐기는 아마추어에게 빈티지 와인은 더할나위 없이 좋은 수집의 사냥감이 되고 있다.
포도주의 품질은 포도의 재배지(terroir), 기후(clmat), 품종(cepage) 그리고 포도를 재배하는 사람(l' homme)에 의해 결정된다. 이 가운데 기후와 관련된 요소가 곧 포도 수확 연도의 빈티지이다. 포도가 익어가는 그 해의 기상조건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그 해의 포도로 빚어진 포도주의 당도와 맛이 결정되게 마련이다. 같은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주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포도주의 맛이 달라지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포도주의 선택에 있어서 좋고 나쁜 빈티지를 따지게 되고, 포도주 선택의 한 기준으로 여기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잣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빈티지 연도를 정리한 빈티지 테이블 또는 차트(table de millesime, carte de millesime)를 만들어 배포하는 당사자들에 따라 어느 면에서는 서로 틀리는 기준치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좋은 빈티지에 대해서는 큰 차이가 없으나 나쁜 빈티지에 대해서는 이들 테이블이나 차트에 지역별로 상당한 상이점을 보인다.
예로서, 1988년 및 1990년은 프랑스 빈티지에 있어서 최상의 예외적 빈티지로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좋은 빈티지에 대해서는 다른 테이블에서도 거의 일치점을 보인다. 이에 비해 나쁜 해(mauvaises annees)의 빈티지로 1991년을 지칭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1994년을 가리키는 예도 있다.
이러한 점을 유의할 때 빈티지는 포도주 선택에 있어서 최면술을 거는 것과 같다는 견해도 있다. 빈티지와 관련해 우리가 눈여겨 볼 몇가지 사안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빈티지 이야기는 사실상 프랑스 포도주에 관한 것이며, 좀더 범위를 넓힌다고 해도 유럽산 포도주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호주산 포도주는 특별히 어느해의 것이 좋고 어느해의 것이 나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유럽에서는 기후가 해마다 다양한 변화를 보여 포도 수확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지만 미국이나 호주는
유럽에 비해 비교적 기상변화가 심하지 않아 이로 인한 포도주의 품질 변화가 별문제가 디지 않느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나라의 포도주에도
수확연도로서의 빈티지가 표시돼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포도 수확연도가 언제인가 하는 단순한 의미밖에 담지 않는다. 포도가 익는 과정에서
기상조건은 한결 같았으며 포도는 최상으로 잘 익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럽 포도주의 빈티지는 일정한 주기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상 3~4년의 순확식 주기로서 빈티지 해가 결정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작황과 관련하여, 흔히 우리들이 말하는 '해걸이'에 해당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주기도 반드시 일정한 궤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므로 사실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빈티지, 최상의 와인 맛이 언제인가도 일러준다.
포도주의 빈티지에 대해 우리는 가끔 잘못된 이해를 가지는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빈티지는 그 해의 포도작황이 좋거나 나쁘다는 사실만을 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은 이 빈티지는 또다른 의미도 갖고 있다. 어느 해에 생산된 포도주는 어느 해를 넘기지 말고 마셔야 한다든가 아니면 좀더 숙성시킨 뒤에 마시는 것이 좋다는 일종의 적정 취음연도를 제시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지역마다 숙성의 기간, 최상의 맛을 내는 시기 등이 다르므로 빈티지가 이를 대변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빈티지 차트를 구해 참고하는 것도 한 좋은 방법이 된다.
또 한가지, 빈티지 차트나 테이블에 차이가 생기는 일은 포도주의 맛을 결정하는 기준 즉 방향(芳香), 탄닌, 맛의 깊이 등에 대해서 전문가들 사이에 견해가 서로 다른 데서 기인한다. 지방에 따라 그리고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서 다른 입장을 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긴다.
또한 빈티지는 한 번 평가됐다고 해서 그후로도 계속 불변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견해가 변하면 빈티지의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예로써 1983년 부르고뉴산이 평가절하되는 반면 같은 산지의 1987년도 포도주는 상대적으로 상향 조정되기도 했다.
빈티지는 포도주 선택에 있어서 유용한 잣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포도주 품질의 평가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포도주의 선택이 하나의 취미와 기호로 이어지는 일이라고 한다면 빈티지 차트나 테이블을 구해 익혀 보는 일도 분명 흥미있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