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연의 아침엽서

해수욕 유감

그린빌나 2006. 7. 26. 09:53

 

해수욕 유감
어느 해에 남북 상호 교류의 하나로 남쪽의 기자단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였다. 신문 기자 한 사람이 평양 시민을 붙들고 물었다.
“올 여름에 해수욕을 어디로 갈 계획입니까?”
“해수욕이요?”
서울 말씨를 쓰는 기자의 갑작스런 질문에 그 북녘 사람은 당황했던 모양이다. 그냥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가 없었던지 그 사람은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묘향산으로 해수욕을 갑네다.”
이튿날, 남쪽의 신문은 일제히 이 사실을 대문짝 만하게 실었다. 그 동안 북한이 감추어 두었던 대단한 치부를 발견이라도 한 듯이. 그러면서 한 말씀 덧보태는 것이었다. 산 속으로 해수욕을 간다는 북녘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며, 결국 여가 생활에 있어서도 자본주의 남한이 북한을 앞서고 있다고. 북녘 동포의 그런 대답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오랜 분단으로 인해 남북간 언어의 이질화가 심해진 결과일 수도 있겠고, 질문자의 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온 실수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묘향산도 가고 해수욕도 간다는 말을 남쪽의 기자가 잘못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나는 나에게 물어 본다. 그 동안 해수욕을 몇 번이나 갔었냐고. 6, 70년대만 해도 해수욕이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비록 넉넉하게 살지는 못했으나 여름에 바다에 가서 벌거숭이로 햇볕에 몸을 그을리지 않고도 우리는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등록일 : 200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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