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상처와 용서

그린빌나 2006. 11. 1. 13:59
  

□ 제목 : 상처와 용서


□ 저자 : 예수회 신부.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교수 자격증 취득.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에서 신약 주석학으로 박사 학위 취득. 현재 서강대학교 수도자 대학원에서 신약 과목 강의.


□ 목차 :

    1. 용서, 세상에서 제일 하기 어려운 말

    2. 그래도 하느님은 용서하기를 원하신다

    3. 용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길

    4. 용서하기 위하여

    5. 사소한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6. 감정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작품에 대한 소개 및 요약

  예수회 사제인 저자 송봉모 신부가 사목자로, 고통을 겪는 많은 사람들의 영적 상담을 하면서 그들이 관계개선이나 상처를 치유해 주는데 도움이 되는 심리적 지식이 너무나 부족함을 느껴 그들을 돕기위해 준비한 글이다.


이 책의 주제인 '용서'는 세상에서 제일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하느님은 우리가 용서하기를 원하시는 것. 그리고 그 용서는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용서하기 위한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 누구나, 대단히 심각한 일들로 상처받는 일 보다는 사소한 일들로 상처를 받는 일이 훨씬 많음을 지적하고 그 사소한 성처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용서해야 된다는 것을 알지 만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고 듣는다. 용서하기가 얼마나 힘들면 이러겠는가? 설사 나에게 성처를 준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행실을 고친다 해도 마음이 그 용서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용서의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신앙의 요구 앞에서 용서하고 싶지만 실제로 우리 마음안에 쌓여 가는 것은 화, 분노, 적개심 뿐이다. 하지만 용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용서는 상대방이 뉘우쳤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본문에서)


  우연한 기회에 송신부님의 테이프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 강의는 나에게 용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지침서 역할을 했고 아내에게도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요즘 한창 신심서적 읽고 독후감 쓰기 운동이 벌어지는 터라 평소 책읽기에 등한시한 탓도 있지만 독후감까지 써야 한다니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문고판 형식으로 불량도 적당하고 한번 테이프로 들어 본 경험이 있어 부담스럽지 않은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하지만 그 내용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에 와 닿는 것어서 더 많은 이들에게 꼭 한번 읽기를 권하고 싶다.

우리가 살면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런 세상은 없기에 내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덜 주고  다른이로부터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도록 용서의 왕이신 하느님나라의 통치방식을 마땅히 따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정성으로 돌보며 치유하시는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이다. 

‘평화의 기도’를 하신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용서의 도구가 되어 살아가도록 노력해 보고자 한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




용서, 세상에서 제일 하기 어려운 말


  세상에서 제일 하기 어려운 것 두가지를 들라면 죄를 안 짓는 것과 내게 상처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살면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한 세상은 없다.

  용서하지 않으면 안되는 첫째 이유는 용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용서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른이들에게 피곤한 사람으로 찍히지 않기 위해서이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만큼 전염성이 강한 것은 없다. 한 사람의 마음이 우울하면 그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도 어두워진다.



□ 그래도 하느님은 용서하기를 원하신다


  용서에 관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절대적이다. ‘만약’이라든가 ‘하지만’이라든가 하는 핑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또 ‘상대가 준비가 되면’이란 조건도 붙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서에서 완전수인 일흔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고 명하셨다.

하느님과 예수께서 우리에게 무조건 용서하라고 하시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나라는 용서의 나라이고, 하느님 나라의 통치방식은 용서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점은 구원사업의 정점이었던 십자가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시던 예수께서는 하느님께 용서의 기도를 청한다.

예수께서 하신 기도.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한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루가 23,24.)

여기서 그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유다. 최고법정, 그리고 빌라도 이다.

유다는 배반하여 스승 예수를 팔아넘겼고, 최고법정은 자국의 동포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식민 통치자인 빌라도에게 넘겨 배반하였고, 빌라도는 로마제국법에 따라 정의와 공평 속에서 예수의 무죄를 선언해야 했건만 폭동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예수를 처형하도록 병사들에게 넘김으로써 배반하였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을 배반한 자들, 당신의 죽으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이들을 용서해 주기를 청하셨다.

하늘 나라의 왕이신 주님께서 하늘 나라에 들어가시기 전에 무조건적인 용서를 베푸시는 것이다.

용서의 왕이신 주님께서는 당신 오른편에 매달린 사형수에게도 용서를 베푸신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루가 23,43 )

살아 생전 좋은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사형수에게 예수께서는 무조건 용서를 베푸시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보여주신 이 사건들은 하느님의 왕국이 어떤 곳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우리는 하늘 나라의 시민들이기에 용서의 나라 시민들이다. 그런데 용서의 왕국의 시민권자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용서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진정으로 하늘 나라의 시민이기를 원한다면, 우리에게 잘못한 이웃과 원수들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요구하신 절대적 용서를 살아간 이들, 곧 용서의 왕을 그대로 본받아 살아간 이들은 우리가 용서를 하며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어준다.

아기 예수님의 거룩한 탄생을 기념하고 나서 바로 다음날 기억하는 성인은 스테파노 성인이다. 왜 하필 스테파노를 성탄 다음날 기념하는 것일까?

스테파노는 자기를 돌로 쳐 죽이는 이들을 위해 주님께 용서를 빌면서 순교하였다.

또 용서의 주님을 본받은 이가 있으니 토머스 모어이다.

그는 자기 목을 자르는 이를 위로하며 말하기를 “여보게, 날 죽이는 것을 언짢게 생각지 말게나. 우리 모두는 다 천국에서 기쁜 마음으로 만날 것이니.”

이렇게 용서를 살아간 구체적 인물을 본받는 것은 용서하려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언젠가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었다. 살인죄를 저지르고도 10년 넘게 잡히지 않고 살아온 자가 자수하였다. 경찰은 그를 의심하지도 않았었는데 스스로 자기 죄를 고백한 것이다.

그가 자수한 것은, 자기가 죽인 할머니의 마지막 기도 때문이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돈을 빼앗고 자기를 죽이려는 강도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께만 “주님, 제가 지금 당신께 갑니다.”라고 여러 번 외쳤다고 했다.

할머니의 그 마지막 말이 그 살인자의 마음을 지난 10년간 괴롭히다가 끝내 자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날은 전문가가 존중받는 시대다. 하느님의 전문은 용서이다. 우리가 용서의 전문가인 하느님을 존중하고, 그분의 용서를 받으면서 살아가기 위하여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 용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길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첫째 이유는 용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용서를 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른 이들에게 피곤한 사람으로 찍히지 않기 위해서이다.

  영성학자들은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곧 마귀에게 자기 마음을 내주는 것이라 한다. 상대방이 뉘우치기를 기다리면서 ‘마귀의 운동장’에서 헤맬 것이 아니라 그 운동장을 뛰쳐나오는 것이다.



□ 용서하기 위하여


  용서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결심이 필요하고, 그 다음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나를 아프게 한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면 할수록 용서는 쉬어진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상처가 치유되느냐 안되느냐의 열쇠가 바로 나에게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값싼 용서는 나에게 잘못한 이를 애써 좋게 봐준다는 것이고 진정한 용서는 저지른 잘못이나 악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진정한 용서가 이뤄 지려면 먼저 유죄 판결이 있어야 한다.

또한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을 용서할 필요가 있다.



□ 사소한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 책에서는 상처를 크게 두가지로 나누고 있다. 하나는 "진짜 상처"이고 다른 하나는 "사소한 상처"이다. 송봉모 신부는 사소한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렇게 제안한다.


첫째 기대하지 말라.

 

둘째 추측하지 말라.

 

셋째 상처에서 자유롭고 싶다면 앞으로 인정과 애정이 없이는 못 산다는 얘기를 하지 말고,


넷째 상처 때문에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자신 안에 있는 ‘상처의 텃밭’을 제거하라.


다섯 번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살아가라고 권고한다.


  상처란 친밀함을 먹고산다. 미움이 얼마나 나에게 그리고 또 남에게 상처를 주는지 내가 나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남을 용서할 수 없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서적인 예화를 들어가며 기도로 도움을 청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주고 싶어하신 것은 죄에서 자유롭고 죽음에서 자유롭고 세상의 근심걱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불교의 언어를 빌려 표현한다면 무애진인(無碍眞人)이다.



□ 감정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마음의 상처 치유도 상처속에 자리잡고 있는 부정적 감정을 먼저 찾아내야 한다. 나의 부정적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첫째,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둘째, 파악된 감정을 표현하라. 표현하지 않고 쌓아놓은 감정은 훗날 정신질환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