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인생 "글쎄요, 한 3개월 정도…." 의사의 짧은 이 한마디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수술 후 3차례에 걸쳐 항암치료를 했는데, 이제는 써볼만한 항암제도 없다면서 내린 일종의 선언이었다. 변화가 생겼다. 우선 네 명의 자식들이 거의 매일 전화를 해 안부를 묻고 격려하고, 매주 번갈아가며 고향집을 들른다..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4.20
엄마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4.19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그 처자 볕에 그을려 행색 초라하지만 가슴과 허벅지는 소젖보다 희리 그 몸에 엎으러져 개개 풀린 늦잠을 자고 더부룩한 수염발로 눈꼽을 떼며 ..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4.19
작은 것이 아름답다 독일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 E. F. 슈마허가 쓴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현대 기술 문명 전반에 걸친 반성과 비판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책이다. 그는 시장 가치를 우선시하는 기존의 경제학을 ‘미치광이 경제주의’라고 혹독하게 비판하고 경제학의 목표와 방법을 전면 재수정하는 이른바 초경제학..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4.11
방귀궁녀 에도시대 일본 왕실에 '방귀궁녀'가 있었다고 한다. 공주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 다니다가 소리나 냄새 등으로 이상한 '기미'가 있으면 얼른 고개를 숙이고 '지금 방귀를 뀐 사람은 소녀이옵니다' 라고 둘러대는 게 그들의 역할이었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란 게 고작 '방귀'에 대한 죄를 덮어 쓰고 대..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4.11
노새 두마리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나뉜 두 목초지가 있었다. 두 목초지는 비슷한 크기였고 각각 푸른 풀이 우거져 있었다. 각 목초지에는 노새가 한 마리씩 살고 있었다. 햇살은 따뜻했고, 물과 목초는 넉넉했기에 노새는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노새 한마리가 철조망 울타리 사이로 고개를 ..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4.11
가장 낮게 나는 새가 가장 자세히 본다 도종환 시인의 산문집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를 펼치다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지은지 3년 되는 지붕을 헐어 내는 작업을 하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거기에는 꼬리에 못이 박힌 채 꼼짝 못하는 도마뱀 한 마리가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3년 동안..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