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랑 사랑의 열정은 일종의 '정신질환'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지붕에 올라가 세레나데를 부르고, 서너 시간이 넘도록 통화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다면 분명 '정상'은 아닐 것이다. 호주 신경과학자들이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뇌를 단층 ..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6.15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 大邱 近郊 과수원 가늘고 아득한 가지 사과빛 어리는 햇살 속 아침을 흔들고 기차는 몸살인 듯 시방 한창 열이 오른다. 애인이여 멀리 있는 애인이여 이런 때는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 박재삼 시인의 시 「無題」다. 나는 평소에 시든 그림이든 작품 앞에 ‘無題’라는 제목을 턱, ..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6.15
제비의 첫 비행 6월은 처마 끝 둥지에서 제비 새끼가 태어나는 시기였다. 알을 품은 지 열엿새가 지난 것이다. 어미들의 날개짓이 더 바빠지는 것도 이 무렵이다.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밤낮없이 입을 한껏 벌려 합창을 하는 새끼들을 위해 하루에도 수백 번씩 먹이를 물어 날라야 하는 것이다. 초여름 논,밭과 주변 도..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6.13
서로 적막하다고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 시인의 시 '墨畵'다. 이 시의 앞 두 줄을 이렇게 바꾸어 읽어본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가 손을 얹었다 피동접미사 ‘히’를 빼고 나면 시의 호흡이 별안간 빨라진다. 할머니..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6.12
내 늙은 아내 내 늙은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내 담배 재떨이를 부시어다가 주는데, 내가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도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텐데?」 하면, 꼭 대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그녀와 함께 가 볼 생각이다. 미..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6.09
행복해지는법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행복이 있다. 산행 중에 산삼 한 뿌리를 발견하는 것, 왁자지껄 친구들과 파티를 여는 것, 평소 꿈꾸던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가볍게 땀을 흘릴 정도의 운동이나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지내는 것…. 이런 것들은 흥분상태에서 즐길 수 있는..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6.08
낡은 집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6.07
'우울(憂鬱)'이란 손님 '우울(憂鬱)'이란 손님이 찾아올 때가 있다. 이 불청객이 찾아들면 기운이 쑥 빠지고 마음이 그냥 답답해진다.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초청하고 음악을 틀었는데도 여전히 저기압이다. 누구는 이럴 땐 레몬이나 오렌지를 먹으라고 권했다. 우선 뱃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좋고, 새콤달콤한 맛에 컨..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6.07
쥐들의 고양이 사냥 고양이에게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매일 동족 한마리를 잃자 쥐들은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집단 공격을 하자' '밤에 기습을 하자' 이런저런 공론이 오갔다. 결국 '고양이가 오는 것을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제 그 방법에 대해 한참을 토론한 끝에 한 쥐가 '고양이 목에 방..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6.07
호랑나비돛배 홀로 산길을 오르다 보니, 가파른 목조계단 위에 호랑나비 날개 한 짝 떨어져 있다. 나도 羽化登仙의 가벼움을 꿈꾸는 생인지라 연민이 일어 가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개미 한 마리 어디서 나타나 뻘뻘 기어오더니 호랑나비 날개를 턱, 입에 문다 그리고 나서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호랑나비 날개를 번.. 유상연의 아침엽서 2006.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