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연의 아침엽서

꼬드김에 대해

그린빌나 2006. 9. 20. 11:29
꼬드김에 대해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젊은 여성들은 안약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눈이 크게 보이고 시선에 깊이를 더해 남성들을 꼬드기기 위해서였다. 효과가 있었을까? ‘털없는 원숭이’의 저자 데스몬드 모리스의 실험에 따르면 확실히 그렇다. 남성들에게 여성의 사진 두 장을 보여준 다음 '누가 더 매력적인가'물었더니 의견이 일치했다. 모두 똑같은 사진이지만 눈만 확대한 사진에 끌렸던 것이다. 그뿐이랴. 고막을 터지는 소리 역시 꼬드김에 영향을 미친다. 큰 소리는 알코올이나 춤처럼 이성이 관장하는 전두엽의 활동을 막고 본능과 감정을 관장하는 대뇌변연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체취나 호르몬도 꼬드김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오감(五感)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가 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꼬드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게 하나 더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핑계'다. 아무리 꼬드김이 강하다고 해도 핑계를 댈 수 없으면 주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필집 '그대 뒷모습'에 적힌 정채봉님의 독백을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0대 때는 눈에 몰려있었다. 보는 것, 그것에 대한 탐이 어느 때보다 강했다.
20대에 들어서는 유혹이 귀로 쏠리는 듯했다. 귀가 유난히 밝은 것 같았고 들리는 것 마다 호기심과 갈등을 느꼈다.
30대에 들어서는 혀에 곤혹을 느꼈다. 입만 열면 교만과 모함이 쏟아져 나오려고 했다.
40대에 이른 지금에사 나는 비로서 남이 나를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유혹하고 있음을 알게됐다.
나태, 관습, 그리고 핑계만 있으면...



등록일 : 200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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